정복군이 바빌론의 창고를 차지한 날, 굶을 뻔한 쪽은 패배한 도시가 아니라 승리한 군대였다.
알렉산드로스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한 뒤였다. 바빌론의 문은 열렸고, 왕실 창고의 봉인도 바뀌었다.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곡식이 산처럼 쌓인 것을 보고 환호했다.
하지만 창고 문을 부수는 것과 안에 든 곡식을 제대로 꺼내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마케도니아군의 보급을 맡은 필론이 점토판 하나를 창고 서기관 벨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 안에 보리 천 몫을 내놔.”
내가 그의 그리스어를 벨이 알아듣는 말로 옮겼다. 벨은 명령을 듣고도 창고 문을 열지 않았다.
“천 몫이 어느 그릇 기준이지?”
필론의 얼굴이 굳었다.
“보리가 그릇에 따라 달라지나?”
“보리는 안 달라져. 네 병사들이 받는 양이 달라지지.”
벨은 크기가 다른 두 그릇을 바닥에 놓았다. 같은 횟수만큼 퍼도 어느 그릇을 쓰느냐에 따라 수레에 실리는 양은 크게 달랐다. 필론이 가져온 명령서에는 숫자만 있었고, 바빌론 창고의 점토판에는 그 숫자를 세는 기준이 따로 적혀 있었다.
필론은 경비병에게 턱짓했다.
“문부터 열어. 안에 있는 자루를 전부 세면 돼.”
벨이 코웃음을 쳤다.
“그 자루들에 든 곡식 중에는 오래돼서 먼저 내보내야 할 것도 있고, 다음 파종을 위해 남겨 둔 것도 있어.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 모르면 빈 자루를 누구에게 돌려보낼지도 모르지. 나를 내쫓을 수는 있어도, 네가 모르는 기록까지 함께 내쫓을 수는 없어.”
경비병의 손이 칼자루로 갔다. 나는 그 앞을 막았다.
“저 사람을 죽이면 창고는 얻어도 사용법은 잃는다.”
필론이 나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해결해.”
말은 쉬웠다.
나는 벨에게 바빌론 창고의 기준을 적게 하고, 필론에게 병사 한 명과 말 한 마리가 하루에 받을 양을 말하게 했다. 우리는 두 기준을 나란히 놓고, 한쪽 수량을 다른 쪽 단위로 바꿔 계산할 수 있는 표를 만들었다. 벨은 어느 곡식을 먼저 꺼내야 하는지 표시했고, 필론은 각 부대가 받을 양을 그 옆에 적었다.
한쪽만으로는 쓸 수 없는 장부였다. 벨은 창고를 알았지만 마케도니아군의 수를 몰랐고, 필론은 군대를 알았지만 창고의 기록을 읽지 못했다.
해가 기울 무렵 첫 수레가 곡식을 싣고 나갔다. 필론은 벨에게 내일도 나오라고 말했다.
벨이 물었다.
“명령인가?”
“부탁이라고 하면 더 빨리 나오나?”
“아니. 하지만 네가 우리 말을 하나쯤 더 배우면 계산은 빨라질 거다.”
다음 날 필론은 곡식 단위를 뜻하는 현지 말을 세 개 외워 왔다. 발음은 형편없었지만, 벨은 처음으로 창고 문을 바로 열어 줬다.
담장 아래의 남자가 물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여러 나라의 제도를 하나로 통일한 겁니까?”
“그렇게 깔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는 빈 땅에 길과 행정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이 이미 넓은 지역을 도로와 창고, 세금과 관리 조직으로 연결해 두었지요. 알렉산드로스는 그 제국을 무너뜨렸지만, 그만한 땅을 움직이려면 결국 기존의 길과 현지 관리들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정복군 뒤에는 병사만 따라다니지 않았다. 상인과 장인, 서기관과 가족들이 함께 이동했다. 주둔지가 생기고 도시가 세워졌다. 그리스어는 여러 도시의 시장과 행정에서 통하는 말로 넓어졌지만, 현지 언어와 풍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신과 옷, 조각 방식과 통치 관습이 같은 거리와 궁정에서 부딪쳤고,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빌리고 바꾸며 자기 방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들이 그때 처음 만난 것도 아니었다. 두 세계는 훨씬 전부터 전쟁하고 거래하고 사람을 주고받았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은 없던 만남을 만든 사건이라기보다, 이미 있던 접촉을 훨씬 더 넓은 지역으로 밀어붙인 사건에 가까웠다.
다른 여성이 물었다.
“결국 정복 덕분에 문화가 발전했다고 봐야 합니까?”
“도시를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새로운 시장과 예술은 보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때 움직인 사람들 중에는 여행을 선택한 상인만이 아니라 끌려간 포로와 강제로 옮겨진 병사도 많았습니다. 문화가 섞였다는 말로 정복의 폭력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나는 바빌론의 창고 문 앞에서 칼자루를 잡던 경비병을 떠올렸다.
“다만 정복자도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섞을 수는 없었습니다. 넓은 땅을 차지한 순간부터 오히려 자신이 정복한 사람들의 지식과 제도에 의존하게 됐으니까요.”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이 남긴 가장 큰 변화는 한 왕이 넓은 땅을 가졌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정복군이 계속 먹고 움직이려면 페르시아 제국의 길과 창고, 현지의 언어와 관리 조직을 이용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물건과 지식이 더 빠르고 넓게 오갔고, 서로 다른 방식은 같은 도시 안에서 부딪치며 섞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금세 갈라졌지만, 한번 생긴 연결까지 함께 사라지지는 않았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그의 장군들은 제국을 나눠 차지하려고 싸웠다. 바빌론 창고의 문에 찍힌 지배자의 표식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
어느 날 벨의 젊은 제자가 새 장부를 들고 물었다.
“이번에는 어느 왕의 이름을 적어야 하지?”
벨은 문밖의 병사들이 들고 있는 깃발을 확인했다.
“지금 저들이 따르는 왕.”
“그 아래 두 언어로 적힌 곡식 수량은?”
“그건 지우지 마. 다음 왕이 와도 창고 사람들은 읽어야 하니까.”
제자는 장부 맨 위의 이름만 고쳐 썼다. 그 아래에서 곡식은 여전히 두 방식으로 계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