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불이 있었어요?”
막내가 물었다.
“불은 사람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어. 번개가 떨어져 생기기도 했고, 마른 숲에 한 번 붙으면 바람을 따라 번졌지.”
“그럼 불을 발견한 건 아니네요?”
이번에는 막내의 누나인 교복 입은 여학생이 물었다. 아까부터 거짓말을 잡아내겠다는 얼굴로 듣고 있었다.
“불을 처음 본 사람은 따로 없었을 거야. 중요한 건 불을 본 날이 아니라, 그 불이 다음 날에도 우리 곁에 있었느냐였지.”
나는 아이들 앞에 놓인 돌 하나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불은 얻는 것보다 잃지 않는 일이 더 어려웠거든.”
“나무만 계속 넣으면 되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말하기 쉽지.”
“아저씨는 몰랐어요?”
“몰랐던 적도 있지.”
아이들이 웃었다. 여학생도 이번에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의 우리는 불을 처음부터 만들어 내는 법을 몰랐다. 번개가 마른 나무를 태우고 지나간 뒤에야 불붙은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을 동굴까지 가져가는 동안에도 마른 풀과 가는 가지를 계속 보태야 했다. 잠깐 한눈을 팔면 불꽃은 작아졌고, 바람이 세게 불면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그러니까 불을 키운 게 아니라 데려온 거예요?”
“처음에는 그쪽에 가까웠어. 우리 손에 들어왔는데도 아직 우리 것이 아닌 짐승 같았지. 계속 먹이지 않으면 달아났으니까.”
“불도 밥을 먹어요?”
“마른 풀, 나뭇가지, 쓰러진 나무. 우리보다 훨씬 많이 먹었어.”
불이 동굴 안에 머물자 달라진 것은 많았다. 밤공기가 차가워져도 전처럼 오래 떨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다가오던 짐승들은 불빛 가장자리 너머에 멈추는 일이 많았다. 고기나 단단한 뿌리를 가까이 두면 냄새와 감촉도 달라졌다. 질긴 살은 덜 힘들게 찢어졌고, 뿌리는 오래 씹지 않아도 삼킬 수 있었다.
“고기도 구워 먹었어요?”
“지금처럼 굽는 법을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야. 불 가까이에 둔 먹이가 달라지는 걸 보고, 조금씩 더 가까이 놓았겠지.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랬어.”
“맛있었어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로 덜 오래 뜯어도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맛있었어.”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아의 소중함만큼은 시대를 넘어 설명할 필요가 없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 모든 편리함이 불꽃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가 이어진 어느 날, 동굴 안에 쌓아 둔 마른 가지가 바닥났다. 나는 밖에서 주워 온 젖은 나뭇가지를 서둘러 불 위에 얹었다. 매운 연기가 쏟아졌고, 불꽃은 나무를 먹지 못한 채 점점 낮아졌다.
“젖은 나무를 넣으면 꺼지잖아요.”
여학생이 바로 지적했다.
“지금은 나도 알아.”
“그럼 그때는요?”
“나는 더 굵은 나무를 넣으면 불이 다시 커질 줄 알았어.”
막내가 이마를 짚었다.
“큰일 났네.”
정확한 평가였다.
굵은 나무를 얹을수록 불꽃은 더 약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을 밝히던 빛은 사라지고, 붉은 점 몇 개만 재 사이에 남았다. 불빛 밖에서는 짐승의 눈이 반짝였고, 동굴 안의 사람들은 사라지는 온기를 따라 불 가까이 붙었다.
그때 불 가까이에 자주 앉던 어린 동료가 내 팔을 밀어냈다. 그 동료는 재를 천천히 헤치다가 아직 붉은 곳을 찾아냈다. 그 위에 마른 풀을 조금 얹고, 몸으로 바람을 막은 뒤 짧게 숨을 불어 넣었다.
“그 사람이 아저씨보다 잘했네요.”
“그날 불 앞에서는 확실히 그랬지.”
“자존심 안 상했어요?”
“불이 꺼지는 것보다는 나았어.”
나는 급한 마음에 숨을 한꺼번에 불어 넣었다가 재만 날렸다. 동료는 다시 마른 풀을 모았고, 이번에는 내가 몸으로 바람을 막았다. 풀 끝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마른 풀을 먼저 놓고, 손가락보다 가는 가지를 얹고, 불꽃이 옮겨 붙은 뒤에야 조금 더 굵은 가지를 올렸다. 붉은 불씨가 마른 풀에 옮겨 붙었고, 불꽃은 가는 가지에서 굵은 가지로 번졌다. 동굴 벽에 다시 우리의 그림자가 나타나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그다음부터는 안 꺼뜨렸어요?”
“많이 꺼뜨렸어.”
“또요?”
“불은 한 번 성공했다고 영원히 남는 물건이 아니니까. 대신 꺼지기 전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거의 사라졌을 때 무엇부터 먹여야 하는지를 아는 손이 늘어났지.”
불을 지키려면 한 사람이 밤새 불꽃만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마른 것을 모으는 사람, 재 아래 남은 불씨를 찾는 사람, 바람을 막는 사람이 필요했다. 여러 사람이 그 순서를 익히자 한 사람이 실수해도 다른 사람이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불은 번개 뒤에 잠시 얻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계속 관리하는 생활의 중심이 됐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인류 최초의 에너지 혁명이었어.”
“근데 왜 에너지 혁명이에요?”
여학생이 물었다.
나는 여학생이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그것도 전기가 없으면 꺼지지?”
“그렇죠.”
“그전까지 우리가 쓰는 힘은 대부분 몸에서 나왔어. 걷고, 들고, 깨뜨리고, 씹는 힘 말이야. 불을 지키기 시작하면서는 나무를 태워 열과 빛을 얻고, 그 힘으로 주변을 바꿀 수 있게 됐지.”
불은 몸 밖의 에너지를 계속 꺼내 쓰게 해 준 첫 기술이었다. 나무를 태워 열과 빛을 얻었고, 그 힘으로 추위와 어둠을 밀어내고 먹이의 상태를 바꿨다. 돌이 손의 힘을 날카롭게 만들었다면, 불은 사람이 머무는 공간 전체를 바꿨다.
“그럼 밤에도 계속 일했어요?”
“꼭 일만 한 건 아니야.”
불빛 밖에서 짐승의 눈이 사라지고 먹을 것이 배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곧바로 몸을 웅크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낮에 놓친 짐승을 몸짓으로 흉내 냈고, 그 모습을 알아본 이들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짧은 소리와 손짓이 불빛 안을 오갔다.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야기를 했어요?”
“말은 짧았어도 얼굴과 손은 볼 수 있었으니까. 어둠은 몸짓을 감추지만 불은 다시 보여 주거든.”
막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불을 얻은 게 아니라 밤을 얻은 거네요.”
나는 웃었다.
“그렇게 말해도 되겠네.”
불이 없을 때 밤은 몸을 웅크리고 어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불을 계속 살려 두자 우리는 어두워진 뒤에도 함께 먹고, 서로의 얼굴과 손짓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낮이 길어진 것은 아니지만, 밤은 처음으로 사람들이 함께 쓰는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