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베껴 쓴 판결문은 한 사람의 눈값을 정했다.
그 값은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랐다.
담장 아래에 앉은 여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눈에도 값이 있었습니까?”
“그 시대의 법은 상처만 보지 않았습니다. 다친 사람이 어떤 신분인지도 함께 봤죠.”
함무라비가 바빌론을 다스리던 말년, 나는 재판 기록을 베끼는 서기관의 조수였다.
내 일은 대단하지 않았다. 증인의 이름을 확인하고, 선임 서기관이 불러 주는 말을 젖은 점토판에 옮겼다. 한 줄을 잘못 누르면 손가락으로 문지우고 다시 썼다. 판결이 내려진 뒤에는 그럴 수 없었다. 판결문이 마르고 봉인이 찍히면, 말은 기록이 됐다.
그날 법정에 실려 온 남자는 곡식 창고에서 자루를 나르던 사람이었다. 싸움을 말리다가 관리 집안의 젊은이가 휘두른 지팡이에 얼굴을 맞았다. 천으로 감싼 한쪽 눈에서는 피가 계속 배어 나왔다.
남자의 형은 낫을 들고 법정 앞까지 왔다. 경비 둘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내 동생 눈을 망가뜨렸으니, 저자의 눈도 내놓아라.”
상대의 아버지는 은을 담은 작은 주머니를 바닥에 던졌다.
“치료비다. 이걸로 끝내라.”
주머니는 너무 가벼웠다. 다친 남자의 형이 몸을 비틀자 경비의 창끝이 그의 가슴을 막았다. 저대로 돌려보내면 밤이 되기 전에 다른 피가 흐를 것 같았다.
재판관은 싸움을 본 사람들을 한 명씩 불렀다. 창고 문을 지키던 사람, 함께 자루를 나르던 사람, 다친 남자를 치료한 사람의 말을 들었다. 서로 다른 부분은 다시 물었고, 같은 부분은 서기관이 점토판에 남겼다.
그 뒤 재판관이 선임 서기관에게 물었다.
“왕의 판결문에는 눈을 다치게 한 경우를 어떻게 처리하라고 되어 있지?”
서기관은 외우고 있던 두 문장을 말했다.
같은 지위인 사람의 눈을 망가뜨리면, 가해자의 눈도 망가뜨린다.
그러나 궁정에 의존해 살아가는 낮은 지위의 사람의 눈을 망가뜨리면, 정해진 양의 은을 낸다.
다친 남자는 왕에게 곡식을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분류됐다. 재판관은 보복 대신 은 한 미나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바닥에 던져진 가벼운 주머니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가해자의 아버지가 항의했다.
“저자가 언제부터 그런 은을 받을 사람이었소?”
재판관이 대답했다.
“내가 정한 양이 아니다.”
그 한마디가 법정의 힘을 바꿨다. 피해자의 형은 원하는 보복을 얻지 못했다. 관리의 집안도 원하는 액수로 흥정할 수 없었다. 양쪽 모두 자기 뜻대로 끝낼 수 없게 되자, 판결은 개인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왕의 일이 됐다.
나는 은의 양과 증인의 이름, 지급할 날을 점토판에 적었다. 상대가 나중에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판결문을 두 벌 만들고 봉인을 찍었다.
성문법이 만든 첫 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의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사건을 왕의 결정과 기록에 묶어, 힘센 집안의 흥정이나 피해자 가족의 복수만으로 결말이 바뀌지 않게 했다. 하지만 누가 같은 대우를 받을지는 신분이 정했다. 글은 자의적인 판결을 줄이는 도구였고, 동시에 불평등을 오래 보존하는 도구였다.
며칠 뒤 나는 검은 돌기둥에 새길 문장을 정리하는 작업을 도왔다. 기둥 위에는 태양과 정의의 신 샤마시 앞에 선 함무라비 왕이 새겨졌다. 그 아래에는 재산, 빚, 결혼, 상해, 임금, 건축처럼 사람들이 다투는 일이 빽빽한 설형문자로 이어졌다.
문장들은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시작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한다면, 그다음에는 이렇게 한다.
모든 다툼을 빠짐없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같은 사건이라도 증인과 계약, 신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재판관이 돌기둥 앞에서 조항을 찾아 그대로 읽어 주는 장면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왕은 자신이 어떤 판결을 정의라고 부르는지 돌에 남겼다. 재판관과 서기관들은 비슷한 사건을 비교할 문장을 얻었다. 훗날의 서기관들은 그 문장을 베끼고, 순서를 익히고, 새로운 경우를 놓고 답을 연습했다.
말로만 전해지던 규칙은 사람과 함께 사라지거나 권력자의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판결을 글로 묶자 왕은 모든 재판에 직접 앉지 않고도 자신의 정의를 내세울 수 있었다. 법을 적는 일은 규칙을 보존하는 기술이면서, 무엇을 정의라고 부를지 정하는 권력을 멀리 보내는 기술이었다.
담장 아래의 여자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세상이 더 정의로워졌습니까?”
“전보다 예측하기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있는 불평등도 불평등이죠.”
판결이 끝난 뒤 나는 다친 남자와 그의 형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갔다. 형은 은이 든 주머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네 눈값이냐?”
다친 남자는 얼굴의 천을 고쳐 묶었다.
“아니. 겨울 동안 아이들이 굶지 않을 값이야.”
그는 은을 받아 들었다. 용서해서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가족에게 곡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날 더 이상의 피는 흐르지 않았다.
판결문은 복수를 멈췄다.
그리고 한 사람의 눈이 다른 사람의 눈과 같은 값이 아니라는 사실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글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