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염소 한 마리를 죽이려다가 손등을 얻어맞았다.
칼날이 목에 닿기 직전, 마른 막대기가 내 손을 후려쳤다. 마을에서 염소 떼를 맡던 노인이었다.
“수컷을 잡아.”
“이놈이 더 큽니다.”
나는 배가 불룩한 암컷을 가리켰다. 겨울이 끝나 갈 무렵이라 사람들은 모두 야위어 있었다. 눈앞의 암컷은 떼에서 가장 살이 올라 보였다.
노인은 막대기 끝으로 암컷의 배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잡지 말라는 거다. 저건 한 마리가 아니야.”
“제 눈에는 한 마리인데요.”
“배 속까지 세어.”
결국 그날 잡은 것은 몸집이 작은 젊은 수컷이었다. 사람들에게 돌아간 고기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적었다. 나는 뼈에 붙은 살을 긁어 먹으면서도 노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새끼 때문에 지금 배고픈 사람들이 덜 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무렵 우리는 산에서 염소를 발견해도 예전처럼 무조건 쫓아가 잡지 않았다. 사람 가까이 내려오는 떼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지켜봤고, 암컷과 새끼가 멀리 흩어지지 않게 막았다. 염소들은 여전히 사람을 피하고 틈만 나면 돌담을 넘었지만, 적어도 다음 사냥까지 산 너머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노인은 염소를 볼 때마다 다리와 배를 살폈다. 새끼를 밴 암컷과 아직 어린 수컷을 구별했고, 어미 없이 뒤처진 새끼도 기억했다.
“그걸 다 어떻게 구별합니까?”
“사냥감으로 보면 다 고기다. 떼로 보면 한 마리씩 다르지.”
봄이 오자 노인이 살려 둔 암컷들이 차례로 새끼를 낳았다. 어제까지 한 마리였던 염소 곁에 다리가 가느다란 새끼가 붙어 섰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새끼의 울음소리가 돌담 안에서 들렸다.
그제야 노인이 내게 무엇을 세라고 했는지 알았다.
그 뒤로 우리도 염소를 고르는 법을 바꿨다. 사람만 보면 돌담을 들이받는 수컷은 먼저 잡고, 떼를 잘 따르는 수컷은 남겨 두었다. 새끼를 자주 낳고 잘 기르는 암컷도 더 오래 살렸다.
한두 번 그런다고 염소의 모습이 바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선택을 반복했다. 그러자 마을의 떼에는 사람 곁에서 지내는 성질을 가진 염소의 새끼가 점점 많아졌다.
우리가 염소 한 마리의 몸을 직접 바꾼 것은 아니었다. 대신 어떤 염소가 살아서 새끼를 남길지를 계속 결정했다. 그 선택이 여러 세대 동안 쌓이면서 마을의 염소 떼도 조금씩 달라졌다.
사냥꾼에게 염소 한 마리는 잡아먹으면 끝나는 고기였다. 하지만 떼를 기르기 시작하자 살려 둔 암컷은 다음 해에 새끼를 낳았다. 인간은 짐승을 죽이는 것뿐 아니라, 어떤 짐승을 살리고 번식시킬지도 결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염소를 살려 둔다고 저절로 떼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곡식은 항아리에 넣어 두면 먹이를 달라고 울지 않았다. 염소는 매일 풀과 물이 필요했고, 밤마다 달아날 구멍을 찾았다. 새끼 한 마리는 병으로 죽었고, 두 마리는 무너진 돌담 사이로 도망쳤다. 늑대가 내려온 밤에는 암컷 한 마리가 죽었다.
암컷 한 마리를 잃으면 고기 한 마리만 잃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암컷이 앞으로 낳을 새끼들도 함께 잃었다.
떼가 커질수록 얻을 수 있는 고기는 늘었다. 그만큼 물을 먹이고, 풀을 찾고, 병든 염소를 떼어 놓고, 늑대와 도둑을 막는 일도 늘었다.
가축은 새끼를 낳아 스스로 수를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먹이와 물을 주고 지키지 않으면 병들거나 죽거나 달아났다. 인간은 살아 있는 재산을 얻는 대신, 그 생명을 매일 돌봐야 하는 부담도 함께 떠안았다.
사람들의 하루도 염소에 맞춰 달라졌다. 사냥을 떠나고 싶어도 떼를 지킬 사람이 남아야 했다. 쉬고 싶어도 해가 지기 전에는 흩어진 염소를 다시 모아야 했다.
우리가 염소를 붙잡아 두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도 염소를 돌보는 일에서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여름이 길어지자 마을 주변의 풀이 먼저 바닥났다. 항아리에 쌓은 곡식은 옮기기 어려웠지만, 염소 떼는 걸을 수 있었다. 우리는 며칠치 식량을 챙겨 물과 풀이 남은 산비탈로 염소들을 몰았다. 일부는 밭과 집을 지키기 위해 마을에 남았고, 나머지는 떼를 따라 움직였다.
가장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물었다.
“어제는 농사를 지으려면 밭 근처에 머물러야 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가축을 기르면 다시 이동할 수 있었네요.”
“그렇습니다. 농사를 시작했다고 모든 사람이 한곳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무렵 염소에게서 얻던 것은 주로 고기와 가죽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짐승을 죽이지 않고도 젖과 털을 얻었다. 더 큰 가축에게는 짐을 나르게 했고, 밭을 가는 힘도 빌렸다.
가축 한 마리는 한 끼의 고기로 끝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 여러 차례 먹을 것과 쓸 것을 주었고, 새끼까지 남겼다.
농사를 지으면 밭 가까이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은 떼와 함께 풀과 물을 찾아 움직일 수 있었다. 가축화는 인간에게 식량과 재산을 데리고 이동하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열어 주었다.
그해 여름, 곡식은 마을의 항아리에 남겨 두었다.
염소 떼는 우리와 함께 물이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인간의 식량은 이제 땅에서 자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걷고 새끼를 낳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