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굿간이 타 버렸을 때, 나는 살아남은 말이 몇 마리인지 알고 있었다. 다친 사람이 몇 명인지는 몰랐다.
노나라에서 공자의 집 마굿간 일을 돕던 때였다. 불길은 겨우 잡았지만 지붕 한쪽이 내려앉았고, 뜰에는 풀어 놓은 말과 그을린 마구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말들의 다리를 살피면서 머릿속으로 잃어버린 물건의 값을 더했다.
곁에서 일하던 소년은 소매가 타서 팔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도 바닥에 떨어진 고삐를 주워 모았다.
“그건 나중에 해. 팔부터 좀 봐.”
“이것까지 없어지면 제가 가져갔다고 할까 봐요.”
소년은 젖은 고삐를 품에 안은 채 놓지 않았다. 나는 더 말하지 못했다. 좋은 말과 마구는 비쌌고, 일을 맡긴 사람이 돌아오면 누군가는 손해를 설명해야 했다. 나도 무슨 말을 할지 고르는 중이었다. 불이 어디서 났는지보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먼저 꺼내고 싶었다.
공자가 돌아오자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나는 살아남은 말부터 보고하려고 입을 열었다.
“사람이 다쳤느냐?”
준비해 둔 말이 쓸모없어졌다. 나는 소년을 돌아봤다. 아까부터 팔을 보고도 얼마나 다쳤는지는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이 아이가 팔을 데었습니다.”
공자는 소년을 앉히게 했다. 말을 몇 마리 잃었는지부터 따져 묻지 않았다. 그 덕에 소년은 고삐를 내려놓았고, 나는 아이의 팔에 붙은 소매를 살필 수 있었다.
그날 말과 마구의 값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부서진 지붕도 다시 세워야 했다. 다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가 달라졌다. 나는 손해를 줄이려고 남은 물건을 모았고, 그는 다친 사람부터 찾았다.
담장 아래의 남자가 팔짱을 풀었다.
“저도 말부터 셌을 것 같습니다. 그걸 맡아서 일했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말을 잘 돌보면 제 몫은 다한 줄 알았죠. 그런데 말의 다리는 살피면서 옆 사람의 팔은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잠깐 자기 팔을 내려다봤다. 나는 그가 더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 뒤로 공자가 제자들과 이야기할 때면 나도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높은 사람에게 공손히 말하고 어른을 잘 모시라는 가르침으로 들렸다. 그런 말이라면 다른 집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자가 요구하는 몫은 아랫사람에게만 있지 않았다. 군주는 군주답게 행동해야 했고, 아버지도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해야 했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맞게 사람을 대하고 자기 욕심을 다스려야 했다.
그는 위아래 구별을 없애자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마다 맡은 관계와 도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 말을 진지하게 따르면, 윗사람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남에게 도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자기 도리를 어겼는지 따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높은 사람이 잘못한 일에는 눈이 밝았지만, 내 잘못에는 설명을 아주 잘 붙였다. 시켜서 했고, 먹고살아야 했고, 다들 그렇게 했다. 오래 살면서 그런 말도 많이 배웠다.
공자의 가르침은 내가 무엇을 해냈는지만이 아니라, 그 일을 하며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도 돌아보게 했다. 혼날 일이 없다고 해서 잘한 일은 아니었다.
앞뒤로 몇 세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따져 묻고 있었다. 인도에서 붓다를 따르는 이들은 고통이 왜 생기며 어떤 집착과 행동이 그것을 되풀이하는지 물었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돈과 명성을 얻는 일보다 자기 삶을 살피는 일을 앞세웠다. 서아시아의 히브리 예언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짓밟으며 쌓은 부를 꾸짖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답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어떤 가르침은 가족과 사회에서 맡은 도리를, 어떤 가르침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중심에 두었다. 나는 훗날 이런 서로 다른 변화를 묶어 ‘축의 시대’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말은 내게 현자들의 얼굴보다, 다친 팔로 고삐를 움켜쥔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더 큰 도시를 세우고 더 많은 곡식을 걷으며 더 먼 곳까지 군대를 보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제대로 이끈다는 보장은 없었다. 부자가 되는 법과 좋은 삶을 사는 법도 같은 답을 주지 않았다.
이때 처음 생긴 것은 양심이 아니었다. 중요한 변화는 삶과 통치를 따져 볼 기준을 가르침으로 다듬고, 다음 세대가 배우고 논쟁할 수 있게 이어 간 데 있었다. 권력을 가졌거나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옳음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기술과 제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늘렸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대신 정해 주지는 않았다. 커진 힘을 어디에 쓰고 누구를 위해 멈출지, 사람들은 그 선택에도 이유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말을 배운 사람들이 모두 다르게 산 것은 아니었다. 남에게는 엄격한 가르침을 들이대면서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도 많았다. 나도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좋은 말을 기억하는 일은 익숙한 행동을 고치는 일보다 훨씬 쉬웠다.
새 마굿간을 세울 때 소년이 사다리에 오르려 했다. 나는 판자를 건네려다가 아직 붉은 자국이 남은 팔을 보았다.
“넌 밑에서 잡아. 내가 올라갈게.”
소년은 얼른 내려왔다. 내가 일을 대신하겠다는 말에는 두 번 권할 필요가 없었다.
그날 공자는 집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판자를 들고 사다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