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0 BCE수레바퀴연재 본문

회차 023

23화. 수레바퀴는 언제 발명됐을까? 바퀴가 인류의 물류를 바꾼 순간

기원전 약 3500년 마을 사람들이 단단한 나무 바퀴를 단 수레로 곡물을 운반하는 모습

나는 처음 본 수레를 비웃었다.

짐을 나르겠다면서 짐보다 무거운 물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꺼운 나무 바퀴와 축, 그 위에 얹은 짐칸만 해도 사람 몇 명이 달라붙어야 들 수 있을 만큼 무거웠다. 수레를 만든 남자는 우리가 수확한 곡식을 그 위에 싣기 시작했다.

“그 곡식은 등에 지고 가는 편이 빠르겠어.”

“이건 들라고 만든 게 아니야.”

“들지도 못하는 운반 도구라고?”

그가 소 두 마리를 수레 앞에 매며 대답했다.

“굴리면 돼.”

처음에는 나도 뒤에서 밀었다. 소들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나무축에서 거친 소리가 났고, 바퀴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수레가 움직인 뒤에는 내가 거의 힘을 주지 않아도 됐다.

우리가 여러 번 오가며 등에 져야 했던 곡식이 한 번에 창고 쪽으로 움직였다.

곡식의 무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레의 무게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사람이 곡식을 등에 지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깨와 다리로 무게를 버텨야 했다. 수레에 실은 곡식은 바퀴와 축이 받쳤고, 소는 수레를 앞으로 끌었다.

썰매는 바닥 전체가 땅에 끌렸다. 수레는 바퀴가 돌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평평하고 단단한 땅에서는 같은 힘으로 더 많은 짐을 옮길 수 있었다.

바퀴는 짐을 가볍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사람이 매 걸음 무게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게 했다. 바퀴와 축이 짐을 받치고 가축이 수레를 끌면서, 같은 수의 사람이 한 번에 더 많은 물건을 더 멀리 옮길 수 있게 됐다.

나는 창고까지 편하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수레는 밭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흙에 빠졌다.

한쪽 바퀴가 절반 가까이 잠기자 짐칸이 기울었다. 소들이 목을 낮추고 힘을 줬지만, 바퀴는 제자리에서 진흙만 밀어냈다.

결국 우리는 곡식 바구니를 다시 내려 등에 졌다. 짐을 비운 뒤에야 수레를 진흙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이 다시 들어야 하잖아.”

내가 말하자 수레를 만든 남자는 바퀴가 아니라 앞쪽의 진흙길을 가리켰다.

“수레를 고칠 게 아니야. 길을 고쳐야 해.”

사람들은 처음에 반발했다. 수레 하나를 쓰기 위해 밭에서 창고까지 이어진 길을 모두 손봐야 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를 넓히려면 담장을 옮겨야 했고,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곳에는 흙과 돌을 채워야 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한 번 고치면 다음 수레도 지나간다.”

그 말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수레 한 대는 한 사람이 만들 수 있어도, 수레가 계속 다닐 길은 여러 집이 함께 고쳐야 했다. 사람들은 밭과 창고 사이의 길을 넓히고, 수레가 빠지던 곳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수레는 바퀴만 있다고 쓸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다. 가축이 끌 수 있어야 했고, 바퀴가 빠지지 않을 길도 필요했다. 사람들은 수레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마을의 길과 입구까지 함께 바꾸기 시작했다.

다음 수확부터 곡식은 비를 맞기 전에 더 빨리 창고로 들어갔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밭의 곡식도 쉽게 가져올 수 있었다. 전에는 너무 무거워 포기했던 나무와 돌도 마을까지 옮겨 와 더 큰 집과 저장 건물을 지었다.

수레가 빈 채로 돌아오는 일도 줄었다. 곡식을 싣고 간 수레에는 돌아오는 길에 구리와 좋은 석재, 소금과 그릇이 실렸다.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서 구한 물건만 쓰지 않고, 먼 지역에서 만든 물건도 더 자주 주고받았다.

둥근 판은 작업장에서도 쓰였다. 도공은 진흙을 회전판 위에 올리고 판을 돌렸다. 도공이 그릇 주위를 옮겨 다니는 대신, 그릇의 다른 면이 계속 그의 손 앞으로 돌아왔다.

손을 같은 자리에 두고도 그릇 전체를 빠르게 만질 수 있었다. 그릇의 모양을 전보다 고르게 맞추고, 만드는 속도도 높이기 쉬워졌다.

수레에서는 바퀴가 짐을 앞으로 옮겼고, 작업장에서는 회전판이 재료를 사람의 손 앞으로 옮겼다. 회전은 같은 움직임을 끊지 않고 반복하는 방법이 됐다.

가장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물었다.

“그럼 바퀴보다 길이 더 중요했던 것 아닙니까?”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길이 나쁘면 수레는 진흙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수레가 없었다면 여러 집이 힘을 모아 그 길을 넓히고 단단하게 만들 이유도 적었을 겁니다. 수레가 좋은 길을 필요로 했고, 좋은 길은 수레를 더 쓸모 있게 만들었습니다.”

한 번 길을 고치자 다음 수레도 그 길을 이용했다. 수레가 자주 다니는 곳에는 곡식과 물건이 많이 모였다. 사람들은 짐을 바로 싣고 내릴 수 있도록 길 가까이에 창고와 작업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물건이 더 많이 모이면 길을 다시 고칠 이유도 커졌다. 반대로 처음부터 수레가 잘 다니지 않던 길은 점점 덜 사용됐다.

잘 닦인 길은 수레를 편하게 해 주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계속 선택했고, 그 길 주변에 창고와 작업장도 만들었다. 사람과 물건이 많이 오갈수록 그 길을 다시 고쳤기 때문에, 먼저 편리해진 길은 다른 길보다 계속 유리해졌다.

무거운 짐을 멀리 보낼 수 있게 되자 밭과 마을 사이의 거리도 늘어났다. 채석장에서 캔 돌은 큰 건축물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고, 여러 지역의 물건은 교역 장소에 모였다.

훗날 군대도 수레를 이용했다. 병사만 멀리 보내서는 전쟁을 오래 계속할 수 없었다. 곡식과 물, 무기와 천막을 실은 수레가 뒤따라야 많은 병사가 먼 곳에서 버틸 수 있었다.

초기의 무거운 나무 수레가 곧바로 빠른 전차가 된 것은 아니었다. 진흙과 가파른 길에서는 사람이 짐을 지거나 썰매를 쓰는 편이 나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평평한 길에서는 전보다 훨씬 많은 짐을 멀리 옮길 수 있었다.

수확이 끝날 무렵, 밭과 창고 사이에는 바퀴가 남긴 두 줄의 자국이 생겼다.

다음 수레는 먼저 난 자국을 따라갔다. 그곳이 다른 땅보다 단단하고 지나가기 쉬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수레를 위해 길을 고쳤다.

그다음부터는 길이 닦여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수레를 그쪽으로 몰았다.

한 번 편리해진 길에는 사람과 물건이 계속 모이기 시작했다.

역사 메모

바퀴 달린 수레의 기원을 한 장소와 한 발명가에게 확정하기는 어렵다. 수레 그림과 모형, 바퀴 자국, 실제 바퀴 부품을 종합하면 서아시아와 유럽 여러 지역에서 기원전 4천년기 중반 무렵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나타난다. 초기 수레는 대체로 무겁고 단단한 나무 바퀴를 사용했으며, 가벼운 살바퀴와 빠른 전차가 널리 등장하는 것은 훨씬 뒤인 기원전 2천년기다. 근동의 도공들도 기원전 4천년기 후반부터 회전 운동을 활용했지만, 도공의 회전판과 수레바퀴 가운데 어느 것이 다른 하나의 직접적인 기원이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본문의 수레·진흙길·공동 도로 정비와 같은 마을에서 돌아가는 회전판은 바퀴가 요구하고 가능하게 한 물류·생산 체계를 한곳에 압축한 허구다. 최초기 수레 증거 비교 연구·Antiquity · 근동의 초기 회전 운동 연구·Ir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