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문의 언덕에 고기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언덕에 도착하자 누군가 내 손에 밧줄부터 쥐여 주었다.
“이걸 당기라고?”
밧줄 끝에는 거대한 돌기둥이 묶여 있었다. 사람 키를 몇 배나 넘는 돌이었다. 기둥에는 뱀과 여우, 멧돼지와 새가 새겨져 있었고, 몇몇 돌에는 사람의 팔과 손처럼 보이는 무늬도 이어졌다.
훗날 괴베클리 테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 언덕에는 그런 기둥들이 둥글게 서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고기를 자를 수도, 곡식을 담을 수도, 비를 막아 줄 수도 없는 돌이었다. 저렇게 무거운 물건을 왜 힘들게 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덕의 일을 나누던 여자가 밧줄을 잡으라고 손짓했다.
“당기러 온 거잖아.”
“먹으러 왔는데.”
“당기고 나면 더 맛있어.”
주변에는 여러 계곡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돌촉의 모양도 달랐고 짐승 가죽을 묶는 방식도 달랐다. 평소 물가에서 마주쳤다면 서로 무기부터 확인했을 사람들이었다.
그날 우리는 같은 밧줄을 잡았다.
처음에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앞사람들이 먼저 당기면 뒤쪽 밧줄이 늘어졌고, 뒤에서 갑자기 힘을 주면 앞사람들이 넘어졌다. 돌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사람들끼리 고함만 질렀다.
여자가 손을 들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의 첫 구절을 외쳤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 계곡에서 시작된 이야기인지는 나도 몰랐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여자가 한 구절을 외치면 사람들이 다음 구절로 답했다. 몇 번 반복하자 목소리가 하나로 맞았다. 사람들은 대답하는 순간에 밧줄을 당기고, 여자가 다시 외칠 때에는 숨을 골랐다.
수십 명이 같은 순간 몸을 뒤로 기울였다.
조금 전까지 꼼짝도 하지 않던 돌이 흙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야기만 외친다고 돌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돌을 실제로 움직인 것은 사람들의 몸과 밧줄이었다. 일을 하기 전에 먹은 곡식과 고기도 힘이 됐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 수십 명이 같은 순간에 힘을 쓰게 만든 것은, 모두가 함께 외친 이야기였다.
일이 끝나자 언덕 곳곳에 음식이 놓였다. 어떤 무리는 가젤 고기를 가져왔고, 어떤 무리는 야생 곡식과 견과를 내놓았다. 곡식을 가는 사람과 고기를 나누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과 돌에 짐승을 새기는 사람이 한곳에 섞였다.
밧줄에 쓸린 내 손바닥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여자가 내게 고기 한 점을 건넸다.
“당기고 먹으니 더 맛있지?”
“배가 더 고파졌을 뿐이야.”
“그런데도 다음에 또 올 거야.”
나는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입은 이미 고기를 받아먹고 있었다.
여자가 웃었다.
나는 고기를 씹다가 물었다.
“사람들이 여기 오는 건 결국 이걸 먹기 위해서 아니야?”
“그럼 왜 각자 잡은 걸 집에서 먹지 않고 여기까지 가져왔을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배를 채우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높은 언덕까지 고기와 곡식을 가져올 필요가 없었다. 자기 가족끼리 편하게 나눠 먹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음식을 들고 이곳까지 찾아왔다. 이 언덕에서 함께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둥에 새겨진 짐승과 사람들이 함께 외우는 이야기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모일지를 알려 주었다.
먹을 것은 사람들에게 일할 힘을 주었다. 이야기는 그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일에 힘을 쓰게 만들었다. 풍요가 생긴 뒤에야 거대한 상징물이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함께 믿는 것이 사람과 음식과 노동을 한곳에 모았고, 그 과정에서 더 큰 생산과 협력이 필요해지기도 했다.
가장 앞에 앉아 있던 남자의 물음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돌을 세울 수는 없잖아요.”
“물론입니다. 굶은 사람은 돌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음식만 필요했다면 각자 자기 집에서 먹어도 됐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다음 계절에도 다시 같은 언덕을 찾아오게 만든 것은, 이곳에서 함께 나눈 믿음과 이야기였습니다.”
음식은 사람들을 그날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다음 계절에도 그들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 모은 것은, 함께 나눈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때가 되면 기둥이 서 있는 언덕을 떠올렸다. 누군가 모든 계곡을 돌아다니며 한 사람씩 불러올 필요도 없었다. 같은 장소와 이야기를 기억한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나섰다.
그전에도 가족과 작은 무리는 함께 사냥하고 음식을 나눴다. 하지만 괴베클리 테페에서는 서로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일을 했다.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람들도 공통의 상징과 이야기로 힘을 합칠 수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 잘 몰라도 함께 일할 수 있었다. 협력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자 한 마을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던 일도 가능해졌다. 공동의 이야기는 ‘우리’의 범위를 가족과 이웃 너머까지 넓혔다.
물론 모두를 하나로 묶어 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우리’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은 ‘우리 밖’에 놓이게 된다.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을 하나로 묶었지만, 동시에 누구를 같은 편으로 받아들이고 누구를 밖에 둘 것인지 정하는 경계도 만들었다. 결속과 배제는 같은 곳에서 시작됐다.
해가 낮아질 무렵, 땅에 누워 있던 기둥이 마침내 일어섰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로 환호했다. 그래도 모두 같은 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날 언덕에 세워진 가장 큰 것은 돌기둥이 아니었다.
서로 알지 못하던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이전보다 훨씬 큰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