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해가 지기 전에 떠나야 했다.
그런데 선장과 기름 상인 미라는 저울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싸우고 있었다.
“이쪽 저울로는 열두 닢 무게가 맞아.”
선장이 누런 금속 조각들을 탁자에 쏟았다. 금과 은이 섞인 호박금이었다. 강에서 건진 작은 덩이도 있었고, 막대에서 잘라 낸 듯 모서리가 날카로운 조각도 있었다.
미라는 자기 저울의 접시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내 저울로는 모자라. 그리고 이건 금빛이 너무 흐려. 은을 얼마나 섞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부두에는 기름 항아리 서른 개가 줄지어 있었다. 짐꾼들은 항아리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선원들은 돛줄을 풀어 놓고 하늘만 보았다. 거래 하나가 끝나지 않자 배와 사람 스무 명이 함께 멈췄다.
그 시절에도 돈은 있었다. 보리로 값을 매기고, 은의 무게로 빚을 적고, 잘라 낸 금속으로 큰 거래를 했다. 문제는 금속 조각 하나가 곧바로 약속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울에 달아야 했다.
표면을 긁어 속까지 같은 금속인지 봐야 했다.
저울추와 저울추가 정말 같은 무게인지도 다퉈야 했다.
나는 사르디스에서 온 주화 장인 곁에 서 있었다. 그는 가죽 주머니를 열어 작고 둥근 금속 조각들을 꺼냈다. 조각들은 모양이 조금씩 달랐지만 한쪽에는 사자 머리가, 다른 쪽에는 네모난 펀치 자국이 박혀 있었다.
“이걸 써 보시오.”
미라가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까 것과 같은 호박금이잖아.”
“무게를 맞춘 다음 찍었소.”
“사자가 무게를 대신 재 주기라도 해?”
장인은 대답 대신 금속 조각 하나를 내게 건넸다. 나는 미라의 저울에 올렸다. 약속한 무게에 맞았다. 두 번째도 맞았다.
미라는 세 번째 조각을 올리려 했다.
선장이 소리쳤다.
“그걸 전부 다시 달면 뭐가 달라져?”
미라는 그를 노려봤다.
“내 기름이 바다에 빠지면 당신 손해지만, 당신 금속의 무게가 모자라면 내 손해잖아.”
주화 장인이 사자 머리를 가리켰다.
“이 표식이 있는 조각은 같은 무게 단위로 만들었소. 왕의 창고도 이 단위로 받소. 못 믿겠으면 오늘은 전부 달아도 좋소. 하지만 다음 거래에서는 먼저 개수를 세게 될 거요.”
미라는 결국 사자 표식이 찍힌 조각들을 하나씩 저울에 올렸다. 배는 그만큼 더 기다렸다.
열한 번째까지 맞았다.
마지막 조각은 가벼웠다.
선장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그 조각을 뒤집었다. 사자 머리는 흐렸고, 뒷면의 네모난 자국은 없었다. 누군가 비슷하게 두드린 금속 덩이였다.
미라가 진짜 조각 열한 개와 가짜 한 개를 갈라 놓았다.
“사자가 거짓말을 막지는 못하는군.”
“맞소.” 장인이 말했다. “대신 누구의 약속을 흉내 냈는지는 보여 주지.”
선장은 가짜 조각 대신 작은 분할 주화들을 더 내놓았다. 미라는 그것들까지 달아 본 뒤 거래를 끝냈다. 짐꾼들이 항아리를 들었고, 선원들이 돛을 올렸다.
그날 저울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다음 배가 들어왔을 때, 미라는 사자 머리를 확인하고 먼저 개수를 셌다. 무게가 이상해 보이는 한 조각만 저울에 올렸다.
주화는 돈을 처음 발명한 물건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훨씬 전부터 보리와 은으로 값을 계산하고 금속의 무게를 재어 지불했다. 주화가 바꾼 것은 확인의 순서였다. 발행자가 미리 무게를 맞추고 표식을 찍자, 거래할 때마다 모든 금속을 처음부터 재고 시험하던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담장 아래의 남자가 물었다.
“그럼 왕이 사자만 찍으면 평범한 금속도 비싼 돈이 됐습니까?”
“그 정도로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초기 주화의 가치는 금·은이라는 재료와 무게에 크게 기대고 있었습니다. 호박금은 금과 은의 비율이 일정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다른 도시에서는 낯선 표식의 주화를 낮은 값으로 받아 주기도 했죠. 사람들이 그 표식을 알아보고, 같은 단위로 다시 받아 줄 상인과 창고와 도시가 있어야 했습니다.”
표식은 금속 안에 가치를 마법처럼 넣지 않았다. 대신 무게와 책임을 한 조각에 묶었다. 사람들은 금속만 믿는 대신 그 조각을 만든 권위와 그것을 다시 받을 시장까지 함께 믿게 됐다. 그래서 주화는 거래를 빠르게 했지만, 동시에 누가 기준을 정하고 누구의 표식이 국경을 넘는가를 권력의 문제로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서쪽 바닷가의 여러 도시가 저마다 다른 동물과 문양을 금속에 찍었다. 같은 표식 안에서는 계산이 빨라졌다. 다른 표식이 나타나면 환전상과 저울이 다시 필요했다.
미라는 마지막까지 저울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부터 손님들은 저울보다 먼저 사자 머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