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백 개의 기호를 배운 뒤에야 글을 쓸 수 있었다.
광산의 길잡이는 집 한 채를 그린 뒤 내게 말했다.
“이건 집이 아니야. 소리야.”
시나이반도의 세라빗 엘카딤에는 청록석 광산이 있었다. 이집트에서 온 관리와 채석공, 군인 사이에 우리처럼 동북쪽 레반트에서 온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나는 두 집단의 말을 알아들어서 원정대의 짐과 사람이 오갈 때 통역을 맡았다.
광산 위 신전에는 청록석의 여주인 하토르에게 바치는 물건이 쌓였다. 그해 원정대장은 붉은 사암으로 만든 작은 스핑크스 하나를 바치기로 했다. 이집트인 서기관은 오른쪽 어깨에 반듯한 신성문자를 새겼다.
하토르의 사랑을 받는 자, 청록석의 여주인.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문장이 중요한 줄은 알았다. 서기관이 글을 새긴 면만 다른 돌의 표면보다 깨끗했고, 원정대장의 이름은 왕의 이름 가까이에 놓였기 때문이다.
길잡이는 스핑크스를 오래 보았다. 그는 이집트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샘과 골짜기를 알려 주었고, 우리 말로 흥정하는 상인들을 붙잡아 세웠다. 그런데 신에게 바치는 물건에는 그의 말도, 이름도 없었다.
그가 서기관에게 부탁했다.
“반대쪽에 우리 여주인의 이름도 적어 줘. 바알라트.”
서기관은 끌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 돌은 원정대장이 바친다. 네 기도까지 새길 자리는 없다.”
“그럼 내가 새기지.”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집트 글은 그림처럼 보였지만 그림 몇 개를 따라 그린다고 읽을 수 있는 글이 되지는 않았다. 같은 기호가 물건을 뜻하기도 하고 소리를 뜻하기도 했다. 뜻을 분명히 하려고 다른 기호를 덧붙이기도 했다. 숙련된 서기관이 되는 데는 긴 훈련이 필요했다.
밤이 되자 길잡이는 내 숙소 바닥에 깨진 돌조각을 놓았다. 그리고 네모난 집 모양을 그렸다.
“우리 말로 집은 ‘베트’라고 하지.”
“그렇지.”
“그러니까 이건 ‘브’ 소리야.”
나는 집 모양을 더 정교하게 고치려 했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지붕은 필요 없어. 집을 그리는 게 아니니까.”
그는 눈을 그려 우리 말의 첫소리 하나를 꺼냈고, 물결을 그려 물의 첫소리를 꺼냈다. 손바닥 그림에서도 첫소리만 떼어 냈다. 그림의 뜻을 읽는 대신, 우리 말로 그 그림을 부를 때 맨 앞에서 나는 소리를 사용한 것이다.
나는 처음 보는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다. 길잡이는 천천히 발음했고, 나는 그가 정한 그림들을 이어 그렸다. 모음은 따로 적지 않았지만 같은 말을 쓰는 우리는 자음 사이에 어떤 소리가 들어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돌조각을 읽었다.
이번에는 맞았다.
수년 동안 글을 배운 내가, 글을 모른다고 여긴 사람에게서 글의 더 짧은 길을 배운 순간이었다.
초기 알파벳의 큰 변화는 그림을 간단히 그렸다는 데 있지 않았다. 한 기호를 한 단어나 여러 읽는 법에 묶는 대신, 자기 말의 첫소리 하나에 붙였다. 그래서 수백 개의 기호를 익히지 않아도 수십 개의 소리 기호를 조합해 전에 적어 보지 않은 말을 쓸 길이 열렸다.
다음 날 새벽, 우리는 신전에 먼저 올라갔다. 길잡이는 스핑크스의 왼쪽 어깨에 짧은 글을 새겼다. 이집트 글보다 선은 거칠었고 기호의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고 읽었다.
바알라트의 사랑을 받는 자.
뒤늦게 온 서기관이 얼굴을 굳혔다.
“누가 허락했지?”
길잡이는 끌을 내려놓았다.
“당신 글은 하토르를 불렀고, 내 글은 바알라트를 불렀어. 둘 다 이 산의 여주인이야.”
서기관은 그 문장을 읽지 못했다. 지우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을 모욕했는지 설명해야 했다. 그는 한참 스핑크스를 보다가 원정대장의 이름이 손상되지 않았는지만 확인했다.
그리고 그냥 돌아섰다.
담장 아래의 남자가 그 대목에서 물었다.
“그럼 그날부터 아무나 글을 쓸 수 있게 된 겁니까?”
“아닙니다. 기호가 적어져도 배울 시간과 글을 가르칠 사람, 적을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글을 쓸 자격과 쓸모를 정하는 권력도 그대로였죠.”
알파벳은 기록 권력을 곧바로 모두에게 나눠 주지 않았다. 다만 글을 배우는 데 필요한 기호와 훈련을 크게 줄여, 왕궁과 신전의 전문 서기관만 넘던 문턱을 더 많은 사람이 넘을 수 있는 높이로 낮추기 시작했다. 문턱이 낮아졌다고 문이 저절로 열리지는 않지만, 전보다 훨씬 많은 손이 그 문을 밀 수 있게 됐다.
스핑크스의 오른쪽 어깨에는 서기관의 반듯한 문장이 남았다.
왼쪽 어깨에는 길잡이의 삐뚤한 소리가 남았다.
그는 자기 이름을 크게 새기지 못했다.
대신 자기 말로 신을 부르는 데, 더는 서기관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