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메모
모로코 제벨 이르후드에서 발견된 얼굴·턱·치아 화석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로 해석되며, 함께 나온 불에 달궈진 석기의 연대는 약 31만 5천±3만 4천 년 전이다. 얼굴은 비교적 현대적이지만 뇌두개는 길고 오래된 특징을 보여, 사피엔스의 형질이 한꺼번에 완성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늙은 여성과 두 아이의 전승 장면은 문화 축적의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한 허구다. 화석 연구·Nature · 연대 연구·Nature
회차 008
약 30만 년 전 · 호모 사피엔스 등장

“이제 진짜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막내가 묻자 여학생이 먼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지금까지 돌 깨고 불 피우고 들소 잡은 건 누가 했는데?”
“원시인.”
“그 원시인도 사람이거든.”
“둘 다 맞아.”
내가 끼어들자 이번에는 두 아이가 나를 똑같이 쳐다봤다.
“앞서 나온 이들도 사람이었고, 지금부터는 너희와 같은 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이야기가 시작돼. 다만 어느 날 갑자기 첫 사피엔스가 나타나 이전 사람들을 밀어낸 건 아니야.”
“그럼 언제부터 사피엔스였어요?”
“그걸 하루로 대답하려면 거짓말을 해야 해.”
종은 옷처럼 한날한시에 갈아입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부모를 닮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일이 헤아릴 수 없이 이어지고, 훗날 사람들이 그 긴 변화의 어느 구간에 이름을 붙인다.
지금 돌아보면 약 30만 년 전 북아프리카에서 함께 살던 사람들의 얼굴은 오늘날의 우리와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아침마다 사람들의 이마와 턱을 살피며 새로운 종이 나타났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기억하는 것은 얼굴뼈가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지식을 배우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던 모습이었다.
그 무리에는 손가락 마디가 굽은 늙은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메마른 땅에서도 어느 골짜기에 물이 늦게까지 남는지 알았고, 겉은 비슷한 돌 가운데 어느 것이 잘 갈라지는지도 골라냈다. 바람 냄새가 바뀌면 짐승이 어느 길로 움직일지도 남들보다 먼저 알아챘다.
나는 그 여자보다 오래 살았지만, 그 땅에서는 아는 것이 훨씬 적었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모든 곳을 잘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해 늙은 여자의 손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돌을 집으려다 두 번이나 놓쳤고, 물을 마신 뒤에도 숨을 오래 몰아쉬었다. 나는 그 여자가 아는 것을 서둘러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그들의 기억도 사라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늙은 여자가 곁에 앉힌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몇 계절 전 다른 무리와 함께 왔다가 우리 곁에 남은 어린아이였다. 둘은 피가 이어진 사이도 아니었다.
나는 둘 사이에 끼어 손을 내밀었다가 손등을 얻어맞았다. 백만 년도 넘게 돌을 다뤄 온 손을 밀어내다니, 솔직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곧 이유를 알았다. 내 손에는 오래된 습관이 너무 많았다. 늙은 여자가 돌 하나를 가리키면 나는 내가 알던 방식대로 먼저 쥐었고, 그 여자가 손목을 움직이기도 전에 결과를 짐작했다. 그 짐작은 자주 들어맞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 여자가 새로 보여 주려는 손동작을 놓쳤다.
아이는 달랐다. 늙은 여자의 손이 멈추면 같이 멈췄고, 손가락이 돌의 한쪽을 더듬으면 같은 곳을 만졌다. 처음에는 엉뚱한 돌만 집었지만, 손을 몇 번 얻어맞고도 다시 옆에 앉았다. 늙은 여자는 아이가 맞는 돌을 고를 때마다 짧은 소리를 내며 손바닥을 폈다.
그것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해 오던 모방과 가르침이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고 어느 날 갑자기 문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점점 더 많이 다른 사람에게 배우고, 다시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얼마 뒤 늙은 여자는 눈을 뜨지 않았다. 무리는 물을 찾아 떠나야 했고, 나는 그 여자가 알던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함께 사라졌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며칠 뒤 우리는 낯선 돌밭에 닿았다. 내가 먼저 돌 하나를 집어 깨뜨렸지만 속이 푸석해 날이 제대로 생기지 않았다. 그때 아이가 그늘진 바위 아래로 들어가 돌 몇 개를 두드려 보더니 하나를 골랐다. 늙은 여자가 하던 것과 같은 순서였다.
아이가 내리친 돌에서는 길고 단단한 날이 떨어져 나왔다.
그날 저녁, 더 어린 아이 하나가 그 모습을 흉내 냈다. 먼저 배운 아이는 늙은 여자가 했던 것처럼 그 손을 멈춰 세우고, 더 어린 아이에게 다른 돌을 골라 주었다.
아이는 자신이 배운 순서를 더 어린 아이에게 그대로 보여 주려고 여러 번 손을 잡아 고쳐 주었다.
“그 아이가 사피엔스라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여학생이 물었다.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 보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어. 사피엔스의 등장은 아무것도 없던 머리에 문화가 생긴 순간이 아니라, 앞선 인간들이 쌓아 온 것을 물려받을 새로운 계통이 나타난 사건에 가까워.”
호모 사피엔스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문명을 시작하지 않았다. 돌과 불, 복합 도구와 협동은 사피엔스가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했다. 새로 등장한 사람들은 앞선 인간들이 남긴 기술을 배우고, 거기에 자기 경험을 더했다.
몸의 특징은 세대가 바뀌어야 달라졌다. 하지만 늙은 여자가 평생 익힌 기술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에게도 건너갈 수 있었다. 아이는 더 능숙한 손을 타고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평생 배운 것을 자기 출발점으로 삼았다.
문명의 속도가 빨라진 것은 모든 사람이 갑자기 더 영리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음 세대가 앞선 세대의 지식을 배워 같은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반복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앞사람이 멈춘 곳을 자기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오래 사는 것만이 기억을 잃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늙은 여자의 손은 멈춘 뒤에도, 다른 아이의 손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모로코 제벨 이르후드에서 발견된 얼굴·턱·치아 화석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로 해석되며, 함께 나온 불에 달궈진 석기의 연대는 약 31만 5천±3만 4천 년 전이다. 얼굴은 비교적 현대적이지만 뇌두개는 길고 오래된 특징을 보여, 사피엔스의 형질이 한꺼번에 완성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늙은 여성과 두 아이의 전승 장면은 문화 축적의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한 허구다. 화석 연구·Nature · 연대 연구·N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