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kya동굴벽화는 왜 그렸을까?연재 본문

회차 011

11화. 동굴벽화는 왜 그렸을까? 그림이 기억보다 오래 살아남은 순간

약 4만 5천 년 전 동굴벽화 앞에서 초기 인류가 돼지와 사냥 장면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나는 손가락으로 흙바닥에 굽은 등을 그리고, 그 아래에 짧은 다리 네 개를 붙였다. 얼굴 앞에는 길쭉한 주둥이도 그려 넣었다.

“돼지요.”

막내가 곧바로 맞혔다.

“근데 꼬리는 왜 머리에 달렸어요?”

“그건 귀야.”

“아저씨, 그림 못 그리죠?”

아이들이 웃었다. 나는 귀가 되어야 했던 꼬리를 손바닥으로 지웠다.

“그래도 내가 무슨 동물을 그렸는지는 알았잖아.”

“돼지만큼은요.”

얄미웠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던 때가 있었어.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보다, 그림을 본 사람이 무엇을 떠올리는가가 더 중요했던 때.”

내가 기억하는 그림 하나도 돼지에서 시작됐다.

그날 우리를 공격한 수퇘지는 잡히지 않았다. 사냥꾼 다섯 명을 땅바닥에 구르게 하고 숲으로 달아났으니, 따지고 보면 돼지가 이긴 사냥이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불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돼지를 쫓아낸 영웅처럼 말했다.

한 사람은 자기 창이 돼지의 목을 스쳤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자기 고함에 놀라 달아났다고 했다. 나는 그 둘이 가장 먼저 나무 위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둘 다 아니야. 돼지는 우리 냄새를 맡고 방향을 바꾼 거야.”

내 말은 인기가 없었다. 사실은 대개 허풍보다 재미가 없으니까.

그 자리에 붉은 안료를 자주 만져 손톱 밑이 늘 붉던 여자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붉은손이라고 기억한다. 붉은손은 누가 돼지를 물리쳤는지 따지지 않고, 사람들이 같은 장면을 얼마나 다양하게 말하는지만 들었다.

며칠 뒤 붉은손은 나에게 불을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녀가 고른 곳은 비가 닿지 않는 동굴 안쪽 벽이었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바위의 불룩한 부분이 살아 있는 짐승의 등처럼 움직였다. 붉은손은 그 굴곡을 따라 커다란 돼지의 등을 남기고, 그 앞에 사람 셋을 그렸다.

“사람은 다섯이었어.”

“알아.”

“돼지는 반대쪽으로 달렸고.”

“그것도 알아.”

붉은손은 내게 불을 조금 높이 들라고 했다. 돼지 앞의 작은 사람 하나가 손을 뻗은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데 왜 다르게 그려?”

“다 넣으면 아무것도 안 보여.”

그녀는 돼지의 배에 선 하나를 더 긋고 뒤로 물러났다.

“돼지가 크고, 사람은 작고, 그래도 사람이 도망치지만은 않았다는 것. 나는 그걸 남길 거야.”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림은 그날을 남기는 것 같으면서도, 붉은손이 고른 것만 남기고 있었다. 나무 위로 달아난 두 사람도, 돼지가 사라진 방향도, 아무도 돼지를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결말도 벽에는 없었다.

다음 날 붉은손은 그날 사냥을 보지 못한 아이 하나를 동굴로 데려왔다. 아이는 불빛 속 그림을 한참 올려다보더니 돼지 앞의 작은 사람을 가리켰다.

“이 사람이 돼지한테 다가간 거야?”

붉은손은 대답하지 않고 내 쪽을 보았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가 허풍을 떨었는지까지 말하자 아이는 배를 잡고 웃었다.

동굴 밖으로 나오며 붉은손이 말했다.

“내가 없어도 저 아이는 벽을 보면 너한테 이야기를 물을 거야.”

“내가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묻겠지.”

“아무도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붉은손은 잠시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거고.”

그 말대로 됐다.

여러 해 뒤 그 동굴을 다시 찾았을 때, 그림 앞에는 내가 모르는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붉은손은 그곳에 없었다. 아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녀가 벽을 가리키며 돼지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내용은 내가 겪은 일과 달랐다. 돼지는 더 사나워졌고, 작은 사람은 겁을 내지 않는 사냥꾼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녀가 이야기를 끝내자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라면 어디에 서겠느냐며 그림 앞으로 몰려갔다.

벽 안에서 변하지 않는 돼지 한 마리와 사람 셋.

그런데 그 앞에서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말은 사람을 따라 멀리 갈 수 있지만, 누군가 계속 기억하고 되풀이해야만 살아남는다. 그림은 움직일 수 없는 대신 그 자리에 남아, 그린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새로운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게 했다. 인간의 기억은 몸 밖에 오래 머물 자리를 하나 더 얻었다.

여학생이 내가 그린 돼지를 다시 보았다.

“그럼 그림은 기억을 그대로 저장한 거예요?”

“아니. 그대로 남기는 일은 한 번도 없었어.”

나는 흙 위의 돼지에 뿔을 두 개 그렸다. 막내가 곧바로 항의했다.

“이제 돼지가 아니잖아요.”

“봐. 선 몇 개만 바뀌어도 네가 떠올리는 것이 달라지지.”

무엇을 크게 그리고, 무엇을 빼고, 누구를 가운데 두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른 이야기가 됐다.

이미지는 기억을 몸 밖으로 꺼낸 최초의 그릇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는 언제나 사람이 골랐다. 기록은 망각을 늦추는 힘인 동시에, 먼 훗날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할지 결정하는 힘이기도 했다.

역사 메모

동굴벽화와 암벽화는 약 4만 5천 년 전보다 앞선다. 2026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무나섬의 리앙 메탄두노 동굴에 남은 손 윤곽 그림이 최소 6만 7,800년 전의 것으로 측정됐다. 2024년 연구는 술라웨시 리앙 카람푸앙의 돼지와 인간형 존재들이 함께 있는 장면을 최소 5만 1,200년 전으로 제시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서사적 이미지 표현 가운데 하나다. 그림의 정확한 의미와 제작 목적은 알 수 없으므로, 본문의 수퇘지 사건과 붉은손,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 가는 아이들은 이미지가 기억과 서사를 몸 밖에 남기는 효과를 보여 주기 위한 허구다. 리앙 메탄두노 손 윤곽 연구·Nature · 리앙 카람푸앙 서사 그림 연구·N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