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BCE유클리드 기하학은 왜 증명부터 시작했을까?연재 본문

회차 039

제39화. 유클리드 기하학은 왜 증명부터 시작했을까?

기원전 약 300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클리드와 학생들이 모래판의 합동 삼각형을 측량 도구로 비교하는 모습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클리드에게 돈을 받은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수업 첫날 쫓겨날 뻔하면서 받은 돈이었다.

당시 나는 항구 근처 공사장에서 측량줄을 잡고 있었다. 벽의 길이를 재고, 기둥 사이의 간격을 맞추고, 지붕에 올릴 나무틀을 표시하는 일이었다. 눈대중이 빠른 편이라 제법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삼각형 나무틀 두 개 때문에 임금을 떼일 뻔했다. 목수는 두 틀의 세 변을 같은 길이로 만들었다고 했지만, 하나가 유난히 비뚤어져 보였다. 감독관은 목수가 속였다고 했고, 목수는 측량줄이 틀렸다고 했다. 나는 여러 번 재고도 누구 잘못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 무렵 알렉산드리아에는 도형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는 유클리드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가면 공사장에서 바로 써먹을 계산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 수업에서 유클리드는 선 하나를 긋고, 그 선을 한 변으로 삼아 세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나는 끝까지 참고 들은 뒤 손을 들었다.

“이걸 배우면 제가 무엇을 얻습니까?”

유클리드는 잠시 나를 보더니 곁에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이 사람에게 동전 세 닢을 주게. 배운 것에서도 반드시 이익을 얻어야 하는 모양이군.”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동전을 받아 들고 나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웃음까지 사고 끝내기에는 세 닢이 너무 쌌다. 자리에 다시 앉았다.

다음으로 유클리드는 판에 삼각형 두 개를 그렸다. 두 삼각형은 세 변의 길이가 각각 같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하나는 반듯했고 다른 하나는 찌그러져 보여서, 같은 도형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둘은 같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보기만 해도 다르지 않습니까?”

유클리드는 내 쪽으로 필기판을 밀었다.

“그렇다면 더 잘 그려 보게.”

나는 줄을 곧게 긋고 양쪽 모양을 최대한 비슷하게 다시 그렸다. 이번에는 정말 같아 보였다. 유클리드가 물었다.

“무엇을 밝혔나?”

“두 삼각형이 같다는 것을요.”

“아니. 자네가 나보다 그림을 반듯하게 그린다는 것만 밝혔네.”

사람들이 또 웃었다. 이번에는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유클리드는 그림을 가리키며 우리가 무엇을 이미 받아들였는지부터 확인하게 했다. 어떤 한 대상과 크기가 같은 두 대상은 서로도 같다는 공통 원리를 놓았다. 거기에 앞에서 이미 밝혀 둔 명제와 지금 주어진 세 변의 조건을 더했다. 누군가 중간 결론을 말하면 그는 곧바로 물었다.

“그 말은 어디에서 나왔나?”

대답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멈췄다. 맞는 결론을 우연히 먼저 말해도 소용없었다. 출발점에서 결론까지 빠진 곳 없이 이어져야 했다.

마침내 두 삼각형이 같은 까닭을 끝까지 따라가자, 처음의 못생긴 그림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림은 눈을 도울 뿐이었고, 결론을 떠받친 것은 수업을 듣지 않은 사람도 같은 순서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이유들이었다.

담장 아래 앉아 있던 남자가 물었다.

“그래도 실제 공사에서는 줄로 재는 편이 빠르지 않습니까?”

“눈앞의 나무 하나를 확인할 때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줄은 늘어날 수 있고, 손은 매번 다르게 당깁니다. 측정은 그 물건이 지금 어떤지를 알려 주고, 증명은 같은 종류의 조건을 만족한다면 크기가 다른 도형에서도 무엇이 반드시 따라오는지를 알려 주지요.”

나는 다음 날 공사장으로 돌아가 삼각형 나무틀을 다시 살폈다. 기하학의 결론이 틀린 게 아니었다. 비에 젖은 측량줄 한쪽이 늘어나 있었고, 목수는 그 줄을 팽팽하게 당긴 날과 느슨하게 잡은 날에 각각 한 변을 표시했다. 세 변이 같다는 첫 조건부터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목수는 임금을 받았고, 감독관은 새 줄을 내주었다. 나도 그날 품삯을 온전히 받았다.

측정은 눈앞의 한 물건을 확인한다. 증명은 조건이 같다면 장소와 크기가 달라져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실용적인 계산과 경험은 증명을 통해 한 사람의 요령을 넘어, 다른 사람이 다시 확인하고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 됐다.

유클리드의 더 큰 업적은 모든 도형을 혼자 발견한 데 있지 않았다. 이전 사람들이 알아낸 지식을 정의와 공리, 공통 원리에서 시작해 명제로 이어지는 순서로 정리한 데 있었다. 앞에서 증명한 내용은 다음 증명의 재료가 됐고, 누군가 반대하면 어느 단계가 잘못됐는지 함께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여성이 물었다.

“그런데 공리는 왜 증명하지 않은 겁니까?”

“모든 증명은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출발점을 숨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시작했는지 적어 두면,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처음부터 전부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출발점이 문제인지, 중간 과정이 틀렸는지, 실제 상황에 조건을 잘못 적용했는지 따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증명의 힘은 아무 가정도 하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어떤 가정에서 출발했고 결론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공개하는 데 있다. 그러자 논쟁은 목소리가 큰 사람을 따르는 일에서, 어느 단계가 끊겼는지 함께 찾는 일로 바뀌었다.

나는 그날 받은 동전 세 닢에 한 닢을 더해 유클리드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세 닢을 주셨는데 왜 네 닢을 돌려주나?”

“한 닢은 이자입니다. 오늘 공사장에서 품삯을 지켰습니다.”

유클리드는 네 닢 가운데 하나를 집어 내게 돌려주었다.

“증명에 필요 없는 것은 빼게.”

역사 메모

유클리드는 기원전 300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생애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거의 없다. 《원론》은 앞선 수학 지식을 13권으로 엮었으며, 제1권은 정의와 다섯 공준·공통 원리에서 출발해 각 명제를 앞선 내용으로 증명하는 구조를 보여 준다. 모든 결과를 유클리드가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며,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일부 증명에는 드러내지 않은 가정과 논리적 빈틈도 있다. 배운 것의 이익을 묻는 학생에게 돈을 주었다는 일화는 후대 문헌에 전하며, 본문의 공사장 사건과 수업 장면은 허구다. 유클리드의 생애와 《원론》의 구성·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 《원론》 제1권의 공준과 증명 구조·클라크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