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0 BCE도시국가의 등장연재 본문

회차 027

27화. 도시국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수메르 도시가 문명을 바꾼 순간

기원전 약 3000년 수메르 도시국가의 거리에서 시장과 작업장과 행정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

도시의 성벽은 적군을 막았다.

하지만 병이 퍼진 그해에는, 아픈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나가는 길도 막았다.

나는 곡식 한 자루를 짊어지고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한 도시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내 밭도 친척도 없었다. 그래도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성문 안에서 일꾼을 고르던 남자가 물었다.

“무슨 일을 잘하지?”

“웬만한 건 다 해.”

“그럼 특별히 잘하는 건 없군.”

나는 그날부터 곡식 자루를 나르게 됐다.

마을에서는 여러 일을 조금씩 할 줄 아는 사람이 쓸모 있었다. 도시에서는 한 가지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루 종일 그릇만 빚는 사람, 천만 짜는 사람, 금속만 다루는 사람, 수량만 기록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들은 같은 일을 오랫동안 반복했기 때문에 내가 잠깐 따라 해서는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능숙했다.

수레의 축이 부러졌을 때도 놀랐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이 새 축을 고르는 동안 다른 사람은 바퀴를 손봤다. 끈을 만드는 사람은 새 끈 묶음을 가져왔다.

마을이었다면 며칠 동안 멈췄을 수레가 도시에서는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움직였다.

그들을 먹이는 밭은 대부분 성벽 밖에 있었다. 여러 마을에서 가져온 곡식이 신전과 큰 집의 창고에 쌓였다. 그 곡식은 장인과 운반꾼, 기록 담당자와 경비에게 나뉘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자기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생산한 곡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모든 사람을 뛰어난 기술자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가까운 곳에 모았다. 필요한 사람을 쉽게 찾고 저장된 곡식으로 그들을 먹일 수 있게 되자, 한 사람이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을 여러 전문가가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내가 자루를 나르던 창고에는 나보다 어린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잘 곳을 구하지 못한 내게 자기 방 바닥 한쪽을 내주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누우면 지나갈 틈도 거의 없는 방이었지만, 비바람을 막아 주는 벽은 있었다.

어느 날 성벽 위의 경비가 소리쳤다. 이웃 도시의 군대가 운하 건너편에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밭에 나갔던 사람들이 수레와 가축을 끌고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수레가 지나자 성문이 닫혔다.

처음 며칠 동안은 도시의 힘이 보였다. 높은 성벽은 적의 창과 돌을 막았다. 경비들은 교대로 성벽을 지켰고, 밭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창고의 곡식이 나눠졌다.

자기 집에 곡식을 쌓아 두지 못한 사람도 도시의 창고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곡식은 모두에게 같은 순서로 돌아가지 않았다. 성벽을 지키는 병사와 신전의 일꾼이 먼저 받았다. 우리 같은 운반꾼은 뒤로 밀렸다.

관리들이 사는 넓은 집에는 안뜰과 저장방이 있었다. 좁은 골목의 방에는 피난 온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들어가 몸을 붙이고 잤다.

며칠이 지나자 골목의 냄새가 달라졌다. 성문 안으로 들어온 가축의 분뇨와 버려진 음식, 넘친 오물이 더운 물웅덩이와 섞였다.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차례로 배를 움켜쥐었고, 열이 오른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게 방을 내준 남자도 쓰러졌다. 처음에는 상한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방과 같은 물항아리를 쓰던 사람들도 앓기 시작했다.

사람과 가축이 좁은 곳에 몰리고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병든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일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업고 성문으로 갔다.

“밖으로 나가야 해.”

경비가 고개를 저었다.

“문을 열면 밖의 병사들이 들어온다.”

“안에서는 사람들이 죽고 있어.”

“밖에서는 창을 들고 기다리고 있어.”

경비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성벽이 없었다면 이웃 도시의 군대가 창고와 집을 빼앗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을 막기 위해 문을 닫자, 아픈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도 없었다.

사람을 보호한 성벽이 같은 사람을 도시 안에 가두고 있었다.

내게 자리를 내준 남자는 성문이 다시 열리기 전에 죽었다.

도시는 많은 것을 가까운 곳에 모았다. 사람과 기술이 가까우면 고장 난 물건을 빨리 고치고 필요한 물건을 쉽게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가축, 오물도 가까이 모였기 때문에 병이 퍼질 위험도 커졌다.

곡식이 한곳에 많이 쌓이면 장인과 기록자, 경비를 계속 먹일 수 있었다. 동시에 그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먼저 곡식을 줄지도 정할 수 있었다.

성벽과 군대는 주민을 지켰다. 하지만 곡식과 사람, 작업장이 모인 도시는 이웃 도시가 빼앗고 싶어 하는 큰 표적이 됐다.

도시가 강해질수록 주변 도시도 더 높은 성벽과 더 많은 병사를 준비했다. 한 도시에 모인 곡식과 인구가 더 큰 군대를 먹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장 아래에서 이야기를 듣던 남자가 물었다.

“그렇게 위험한데도 사람들은 왜 계속 도시로 들어갔습니까?”

“도시가 위험하다는 것과, 도시 밖에서 살기 쉽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요.”

밭이 없는 사람도 도시에서는 자루를 나르고 곡식을 받을 수 있었다. 가족이 없어도 같은 작업장의 사람이 잠자리를 내줄 수 있었다. 도구가 망가지면 가까운 곳에서 고칠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전쟁이 나면 성벽과 병사가 있었고, 수확이 끊겨도 창고의 곡식이 며칠의 시간을 벌어 주었다.

그 혜택은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지 않았다. 보호받으려면 일을 하고 명령도 따라야 했다. 그래도 밭이나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 도시는 살아갈 기회를 주었다.

사람들이 가까이 모이자 기술과 물건은 더 빠르게 오갔다. 같은 이유로 병과 공포도 빠르게 퍼졌다. 많은 곡식은 장인과 경비를 먹였지만, 곡식을 나눠 주는 사람의 권한과 도시가 키울 수 있는 군대도 함께 늘렸다. 도시는 사람을 모아 협력을 키웠고, 바로 그만큼 불평등과 감염, 전쟁의 위험도 키웠다.

성문이 열린 날, 나는 죽은 동료를 성벽 밖에 묻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 메모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화는 기원전 4천년기 후반 우루크 같은 거대 중심지에서 이미 진행됐으며, 기원전 3000년은 도시가 갑자기 발명된 해라기보다 여러 도시가 성장해 초기 왕조 시대의 도시국가 체제로 넘어가던 전환점에 가깝다. 신전·대규모 가구 조직·창고·전문 작업장·봉인과 기록은 복잡하고 계층화된 도시 경제를 이루었고, 기원전 3천년기 초 수메르 남부에는 여러 왕조가 다스리는 도시국가와 도시 간 전쟁이 확인되지만 모든 생산과 교환이 하나의 중앙기관에 통제된 것은 아니다. 인구와 가축의 밀집, 폐기물과 오염된 물은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으나 당시 특정 도시의 유행병을 정확히 진단할 자료는 제한적이다. 본문의 포위, 차등 배급, 좁은 방에서 번진 병과 동료의 죽음은 도시의 밀도가 협력과 불평등·감염·전쟁을 함께 키우는 과정을 한 사건에 압축한 허구다. 우루크와 초기 도시화·Cambridge · 초기 왕조 라가시의 도시 밀도와 도시국가·Antiquity · 고대 병원체 분포 연구·N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