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봄을 믿었다가 세 번 굶었다.
“봄이 거짓말도 해요?”
막내가 물었다.
“따뜻해져서 씨를 뿌렸는데 다시 땅이 얼기도 했어. 비가 왔다고 안심했더니 그 뒤로 오랫동안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은 적도 있었고.”
첫 번째에는 며칠 동안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풀 사이로 새싹이 올라왔고 철새도 돌아왔다. 사람들은 긴 추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먹을 수 있는 씨앗까지 땅에 뿌리고 싹이 나기를 기다렸다.
열흘쯤 뒤 차가운 바람이 돌아왔다. 얕은 물에는 다시 얼음이 잡혔고, 막 올라온 싹은 검게 죽었다. 땅에 넣은 씨앗은 다시 꺼내 먹을 수도 없었다.
두 번째에는 비가 일찍 내렸다가 너무 오래 멎었다. 세 번째에는 곡식이 익기 직전에 큰비가 쏟아져 물길이 바뀌었다. 지난번에 성공한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해도 다음번에는 실패할 수 있었다.
후대에는 그 무렵 이어진 긴 한랭기를 영거 드라이아스라고 불렀다. 당시 우리에게 그런 이름은 없었다. 며칠 따뜻했다고 추위가 끝난 것은 아니며, 지난해와 같은 때에 씨를 뿌려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다시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쉽게 믿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낮은 언덕과 물길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들보리와 여러 풀씨를 거두고, 그중 일부를 마을 가까운 땅에 뿌렸다. 하지만 아직 수확만으로 한 해를 버틸 수는 없었다. 사냥감이 줄고 채집할 때를 놓치면 남겨 둔 씨앗까지 꺼내 먹어야 했다.
어느 날 씨앗을 맡은 젊은 남자가 가죽 주머니를 들고 내게 왔다.
“이번에도 뿌릴 거야?”
“절반만.”
“봄이 돌아왔다며.”
“그 말로 세 번 굶었어.”
우리는 씨앗 절반만 땅에 뿌리고 나머지는 먹을 수 있도록 남겨 두었다. 날이 다시 추워질 때를 대비해 마른 나무도 전부 쓰지 않았다. 사냥꾼들은 곡식만 믿지 않고 평소처럼 먹이를 찾아 나갔다. 또 실패하더라도 모두 굶지 않도록 대비한 것이다.
그해 비는 우리가 바란 날짜에 내리지 않았다. 추운 날도 있었고, 강한 바람에 어린 싹이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추위와 건조가 계절 전체를 뒤집을 만큼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살아남은 곡식은 따뜻한 철이 끝나기 전에 익었다.
한 번 수확했다고 아무도 날씨를 믿지는 않았다. 중요한 변화는 그다음 해부터 보였다.
비가 내린 날짜는 달라도 비가 이어지는 철은 비슷했다. 들보리가 익는 때와 가젤이 지나가는 때도 지난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도 날씨는 조금 달랐지만, 준비해 둔 일을 전부 포기해야 할 만큼 계절이 뒤집히지는 않았다.
젊은 남자는 세 번째 해가 되자 비가 내리기 전에 지붕부터 손봤다. 사냥꾼들은 곡식이 익는 때에 맞춰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정했다. 사람들은 열매가 몰리는 철이 오기 전에 바구니를 수리했다.
전에는 추위나 비가 닥친 뒤에야 움직였다. 이제는 지난 몇 해의 순서를 보고 다음 계절에 필요한 일을 먼저 준비할 수 있었다.
기후가 안정됐다는 말은 매년 같은 날에 비가 오고 같은 양의 곡식이 자랐다는 뜻이 아니다. 가뭄과 홍수, 추위는 계속 있었다. 다만 계절의 순서와 변화 폭이 전보다 덜 흔들리면서 지난해의 경험을 다음 해에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비가 오기 전에 지붕을 고치고, 수확철에 맞춰 사냥 일정을 정하는 등 몇 달 뒤의 일을 미리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에서도 나타났다.
“다음 비가 오기 전에 돌아오겠다.”
“곡식이 익으면 우리 무리와 다시 만나자.”
“이번에 남긴 씨앗은 추운 날이 끝날 때까지 먹지 말자.”
계절이 갑자기 뒤집히던 때에는 아무리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날짜를 맞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비와 온기가 비슷한 순서로 반복되자, 사람들은 여러 달 뒤에 다시 만날 때와 함께할 일을 정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다음 계절을 생각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날씨가 너무 자주 뒤집혀 긴 계획이 실패한다는 점이었다. 계절이 비교적 일정하게 반복되자 씨앗을 남기고 집을 고치며 여러 달 뒤의 노동을 약속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안정된 기후가 농업을 저절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한 해를 걸고 씨앗을 심는 일을 전보다 훨씬 덜 위험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보니 담장 위에 걸쳐 있던 햇빛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시끄럽던 아이들도 어두워진 골목을 돌아보았다.
멀리서 누군가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른 집에서도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벌써 가야 해요?”
막내가 아쉬운 얼굴로 물었다. 막내의 누나인 여학생은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가 아니라 이제야지. 너희 집에서 다 찾고 있잖아.”
아이들은 마지못해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났다.
“다음 이야기는 뭐예요?”
“농사.”
“아까도 씨를 뿌렸잖아요.”
“시험 삼아 씨를 뿌리는 것과, 한 해의 식량을 그 밭에서 얻기로 하는 건 다르지.”
막내는 금세 눈을 빛냈다.
“그럼 내일 또 올게요.”
“나는 오라고 한 적 없는데.”
“오지 말라고도 안 했잖아요.”
아이들이 웃으며 골목으로 달려갔다. 여학생은 아이들을 재촉하면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나를 한 번 돌아본 뒤 따라갔다.
곧 담장 아래에는 아이들이 앉았던 자국만 남았다.
다음 이야기는 씨앗 몇 움큼을 시험 삼아 뿌린 일이 아니었다.
마을의 한 해 식량과 노동을 밭에 걸기 시작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