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kya농업보다 먼저 생긴 마을연재 본문

회차 015

15화. 농업보다 먼저 생긴 마을, 나투프 문화는 왜 정착했을까?

약 1만 4,500년 전 레반트의 나투프 사람들이 반정착 마을에서 생활하는 모습

우리가 한곳에 오래 머물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쥐였다.

“사람이 아니라 쥐요?”

막내가 물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줄면 언제든 떠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쥐는 이곳에 계속 음식이 남는다는 걸 먼저 알아챘지.”

그날 밤에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말려 둔 들보리를 담은 바구니에서 쥐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낮은 돌벽 틈으로 사라졌다. 내가 손을 집어넣자 녀석은 더 깊이 달아났고, 손등만 긁혔다.

“이래서 돌로 집을 지으면 안 돼.”

내 투덜거림에 오래 함께 지낸 친구가 웃었다.

“가죽 천막에도 쥐는 들어왔어.”

“천막은 들고 떠날 수 있잖아.”

“또 그 말이네.”

우리가 머물던 곳 가까이에는 샘이 있었고, 계절마다 들보리와 여러 풀씨가 익었다. 가젤 떼가 지나는 길도 멀지 않았다. 예전에도 먹을 것이 풍부한 철에는 그곳에서 오래 지냈다. 열매와 짐승이 줄어들면 다시 가죽을 걷고 다른 땅으로 떠났다.

그런데 같은 장소로 돌아올 때마다 남아 있는 것이 늘었다. 바람을 막으려고 쌓았던 돌무더기는 둥근 벽이 됐다. 무너진 곳을 고쳐 쌓으면서 벽은 더 두꺼워졌고, 바닥에는 여러 번 피운 불의 재가 겹쳤다. 사람들은 들고 다닐 수 없는 무거운 돌절구까지 가져다 놓았다. 야영지 가장자리에는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무덤도 늘어났다.

여전히 떠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죽을 걷고 불을 끄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집과 도구와 무덤을 모두 버려야 했다.

가젤 떼가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날, 나는 가죽과 창을 챙겼다. 그런데 친구는 자기 집의 지붕을 고치고 있었다.

“안 가?”

“사냥할 사람만 다녀오면 돼.”

“가젤이 멀어지면 먹을 것도 멀어져.”

친구는 새 지붕 위에 마른 풀을 한 움큼 더 얹었다.

“먹을 것이 멀어졌다고 집까지 옮길 필요는 없잖아.”

그전까지 사람이 사는 곳은 먹이가 있는 곳이었다. 먹이가 움직이면 사람도 움직였고, 무리가 떠난 자리에는 식은 재와 부서진 물건만 남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사냥할 수 있는 사람 몇 명만 가젤을 따라갔다. 아이와 노인은 샘 곁의 돌집에 남았고, 다른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서 풀씨와 열매를 모아 돌절구로 갈았다. 우리는 사냥감을 찾아 며칠씩 걸었지만 무리 전체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사냥이 끝나면 돌아올 마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닷새 뒤 고기를 짊어지고 언덕을 넘자, 떠나기 전과 같은 자리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달려왔다. 친구는 고기를 손질할 수 있도록 불가 한쪽을 비워 두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며칠 전까지 쓰던 잠자리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예전에도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찾아온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돌아올 때마다 야영지를 다시 만들었다. 이번에는 집과 불,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반정착 생활은 이동을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전에는 무리 전체가 먹이를 따라 움직였지만, 이제는 일부 사람만 사냥과 채집을 나갔다가 마을로 돌아왔다. 아이와 노인, 집과 불, 무거운 도구는 한곳에 남았고 그곳이 모든 이동의 출발점과 도착점이 됐다.

한곳에 머문다고 편해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늘고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가까운 곳의 땔감과 먹을거리가 더 빨리 줄었다. 물을 길어 오는 길에는 발자국이 깊게 패였고, 버린 뼈와 찌꺼기 주변에는 쥐가 들끓었다.

예전에는 주변이 더러워지거나 먹을 것이 줄면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됐다. 이제는 계속 살기 위해 쓰레기를 치우고 쥐구멍을 막으며 더 먼 곳에서 땔감을 가져와야 했다.

다음 철이 다가오자 친구는 잘 익은 들보리 가운데 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삭을 따로 모았다.

“그건 왜 안 먹어?”

“비가 오면 집 가까이에 뿌릴 거야.”

“풀이 네가 원하는 곳에서 자라 주겠어?”

“그러니까 해 보는 거지.”

친구는 배고픈 날에도 그 이삭 묶음을 건드리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가젤을 사냥하고 야생 열매와 풀씨를 모았다. 먹이가 크게 줄면 한동안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했다. 아직 먹을 것을 전부 밭에서 얻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을에 남는 사람이 늘수록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음식을 계속 구해야 했다. 매번 무리 전체가 먹이를 찾아 떠나는 방식으로는 부족했다. 사람들은 야생 곡식이 언제 익는지 더 자주 살폈고, 좋은 씨를 먹지 않고 남겨 집 가까운 땅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럼 마을 때문에 농사가 생긴 거예요?”

여학생이 물었다.

“마을 하나만으로 농사가 생긴 건 아니야. 하지만 계속 이동할 때는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떠나면 됐고, 한곳에 남으려면 가까운 땅에서 먹을 것을 계속 얻어야 했지.”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서 정착한 경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농업보다 먼저 한곳에 오래 머문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마을 가까이에서 더 많은 식량을 되풀이해 얻어야 했고, 그 필요가 야생 곡식을 관리하고 씨앗을 심는 일을 늘렸다. 정착이 농업의 결과가 되기도 했지만, 농업을 시작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 것이다.

그날 밤 또 바구니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돌 하나를 가져와 쥐구멍을 막았다.

떠날 준비가 아니라, 남을 준비였다.

역사 메모

나투프 문화는 레반트에서 약 1만 5천~1만 1,500년 전에 전개됐으며, 지역과 시기에 따라 이동성과 정착 정도가 달랐다. 요르단 슈베이카 1에는 약 1만 4,600년 전부터 돌로 지은 구조물과 두꺼운 생활층, 갈돌·절구 같은 무거운 석기와 매장 흔적이 남아 있어 농경 정착촌 이전의 장기 거점을 보여 준다. 약 1만 5천 년 전 레반트의 생쥐 자료를 분석한 연구는 사람의 이동이 줄면서 인간 거주지에서 생쥐가 번성할 환경이 농업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해석했다. 2026년 나투프 문화의 낫날 사용 흔적 연구는 일부 집단이 야생 곡식을 집중적으로 거두고 다음 해에 뿌릴 씨앗까지 남긴 초기 재배를 했다고 제안하므로, 정착과 농업의 경계는 단번에 나뉘지 않고 서로를 강화한 긴 과정으로 보는 편이 맞다. 슈베이카 1 연대·정착 연구·Scientific Reports · 정착 생활과 생쥐 연구·PNAS · 나투프 곡식 재배 연구·Scientific Rep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