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곳에서, 나는 물을 나르고 있었다.
밀레토스 항구 옆 그늘에 사람들이 모였다. 선원, 도기 장인, 서기관, 제사 준비를 끝낸 사람까지 한마디씩 보태는 자리였다. 한가해서가 아니었다. 이 도시는 배가 들어올 때마다 낯선 물건과 신과 계산법을 함께 받아들였다. 서로 다른 설명이 부딪힐 일이 많았다.
그날 사람들 한가운데에는 탈레스가 있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의 처음이 물이라는 겁니까?”
항아리 장수 리콘이 물었다. 그는 답을 듣기보다 흠을 잡으러 온 얼굴이었다.
“씨앗도 젖어 있고, 먹는 것도 습기를 품고 있지.”
탈레스가 내 손의 물그릇을 가리켰다.
“마른 것은 죽고, 젖은 것에서는 생명이 움직인다. 나는 물이 만물의 시작이라고 보네.”
리콘은 자기 팔에 난 털을 한 올 뽑았다.
“이것도 물입니까?”
사람들이 웃었다.
탈레스도 웃었다.
“그래서 생각을 더 해야지.”
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신들의 족보를 외우는 사람은 이야기를 틀리면 노래를 고쳤다. 탈레스의 말은 달랐다. 그는 물을 가리켰다. 누구나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내놓고, 거기서 세상의 처음을 설명하려 했다.
그날도 사람들은 제단에 술을 부었다. 탈레스가 신들을 없앤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질문의 방향이었다. 비가 왜 오는지 묻자 하늘의 기분만 살피지 않고 물과 바람과 변화의 질서를 함께 보기 시작했다.
몇 해 뒤, 리콘은 나를 보자마자 빈 항아리를 내밀었다.
“당신 친구가 세상은 물이라더니, 이번 사람은 물도 아니라고 하잖소.”
“제 친구는 아닙니다. 물만 들어 드렸습니다.”
이번에 사람들을 모은 이는 아낙시만드로스였다. 그는 세상의 처음을 물이나 불처럼 눈에 보이는 한 가지로 정하지 않았다. 끝을 정할 수 없는 어떤 근원, 아페이론에서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갈라져 나왔다고 말했다.
리콘이 따졌다.
“그럼 탈레스가 틀렸다는 거요?”
“물을 처음으로 삼으면 불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아낙시만드로스가 되물었다.
“앞사람이 질문을 열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답까지 잠가 둘 필요는 없네.”
리콘은 내게 속삭였다.
“현명한 사람들은 장사꾼이 되면 안 되겠소. 해마다 다른 항아리를 내놓고도 전에 판 것은 도로 받지 않으니.”
나는 웃음을 참느라 물그릇을 내려놓았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땅이 무엇에 받쳐져 있느냐는 질문에도 다른 답을 내놓았다. 땅은 사방에서 비슷한 거리에 있으므로 어느 한쪽으로 떨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발밑을 보았다. 땅이 갑자기 꺼지지는 않았다. 그의 설명이 맞다는 증거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곧바로 물었다.
“사방에서 같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 질문은 모욕도 불경도 아니었다. 설명을 내놓은 사람이 감당해야 할 다음 일이었다.
자연철학의 시작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신을 버린 사건이 아니었다. 세상의 변화를 자연 안의 재료와 질서로 설명하고, 그 설명을 다른 사람이 따져 물을 수 있게 내놓기 시작한 변화였다. 원인은 더 이상 이야기 속 권위만이 아니라 눈앞의 세계에서도 찾아야 했다.
또 몇 해가 지났다.
리콘의 흰머리는 늘었지만 내 얼굴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나를 오래 쳐다봤다가, 새로 모인 사람들 쪽으로 턱을 돌렸다.
“이번에는 또 뭡니까?”
“공기랍니다.”
“보이지도 않는 걸 팔기 시작했군.”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바탕이 공기라고 했다. 공기가 성기고 빽빽해지면서 불, 바람, 구름, 물, 흙과 돌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입술을 좁혀 손등에 바람을 불어 보라고 했다.
“차갑지?”
이번에는 입을 넓게 벌리고 숨을 내쉬었다.
“이쪽은 더 따뜻하네.”
리콘이 자기 손등에 몇 번이나 숨을 불었다.
“이걸로 돌까지 만들었다고 우기면 항아리 하나 값은 받아야겠소.”
그의 투덜거림과 달리 눈은 웃고 있었다.
물, 끝을 정할 수 없는 근원, 공기.
세 답은 서로 달랐다. 오늘날의 자연과학으로 보면 모두 그대로 옳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차이가 중요했다. 뒤의 사람이 앞사람과 다른 답을 내놓았고, 다음 사람은 또 앞선 설명의 약점을 고치려 했다.
처음부터 정답을 가진 것이 과학적 사고의 출발은 아니었다. 틀릴 수 있는 설명을 분명하게 내놓고, 이유를 요구하고, 더 나은 설명이 나오면 앞의 답을 밀어낼 수 있게 된 것이 출발이었다. 지식은 권위자의 소유물에서 반박과 수정이 이어지는 공동 작업으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담장 아래의 여자가 물었다.
“그럼 저 사람들이 최초의 과학자였습니까?”
“현대 과학자와 같았다고 하면 지나칩니다. 정밀한 실험과 수학적 검증, 학술 제도가 갖춰진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설명에는 틀린 것도 많고, 우리가 아는 내용도 훨씬 뒤 사람들이 전한 기록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요?”
“답보다 질문의 규칙이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원인을 자연 안에서 찾고, 누구든 그 설명의 약점을 물을 수 있다는 규칙 말입니다.”
밀레토스에서 리콘은 끝내 어느 답에도 항아리 값을 매기지 못했다.
대신 다음 모임이 열리면 가장 먼저 와서 앞줄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