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같은 담장 아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앞에 앉은 청중의 나이가 훌쩍 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항의하러 온 부모들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서서 말했고 몇 사람은 내 말을 끊기도 했다. 지금은 관심 없는 사람들만 돌아가고, 네 명이 담장 아래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가장 먼저 따지던 남자는 어느새 의자를 가장 앞으로 당겨 놓았다.
“지금까지 들어 보니 아이들이 듣기에 해로울 만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네요. 계속해 보세요.”
나는 그가 처음 찾아온 목적을 굳이 상기시켜 주지 않았다.
“어제 아이들에게는 씨앗을 시험 삼아 뿌리던 데까지 이야기했어요. 오늘은 사람들이 한 해 동안 먹을 식량을 밭에서 얻기 시작한 이야기예요.”
그해 봄, 우리는 곡식이 든 바구니 하나를 앞에 두고 둘로 갈라졌다.
지금 먹자는 사람과 땅에 심을 몫을 남기자는 사람이었다.
추운 철이 길어져 저장한 식량은 거의 바닥났다. 바구니를 비우면 며칠은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곡식을 보관하던 여자가 내가 뻗은 손을 막았다.
“그건 먹을 곡식이 아니야.”
“곡식인데?”
“다음 해 거야.”
그녀의 아이도 배가 고팠다. 그런데도 여자는 바구니를 내놓지 않았다. 지금 먹으면 확실히 배가 불렀다. 반대로 땅에 묻으면 새가 먹거나 비가 오지 않아 전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이미 씨앗에서 싹이 나고, 그 싹에서 더 많은 낟알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몰라서 망설인 것이 아니었다. 오늘 먹을 수 있는 곡식을 포기하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수확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우리는 곡식 일부만 먹고 나머지를 땅에 뿌렸다.
그 뒤로 마을의 생활이 달라졌다. 전에는 먹을 것이 있는 장소를 찾아 사람이 움직였다. 이제는 우리가 밭의 위치를 정하고, 그곳에서 먹을 것이 자라도록 계속 돌봐야 했다.
돌을 치우고 다른 풀을 걷어 내는 데 여러 날이 들었다. 싹이 돋은 뒤에는 새와 들짐승을 쫓을 사람이 필요했다. 가젤 떼가 지나갔을 때 사냥꾼들은 며칠씩 뒤따라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모두 떠나면 그동안 가꾼 곡식을 잃을 수 있었다.
밭은 가젤처럼 멀리 달아나지 않았다. 대신 곡식이 익을 때까지 사람들을 그 자리에 묶어 두었다.
농업 이전에는 주로 먹을 것이 자라는 장소를 찾아 사람이 이동했다. 농업을 시작한 뒤에는 사람이 씨앗을 심을 장소와 시기를 정하고, 더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미리 노동했다. 식량을 마을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게 된 대신, 사람들은 밭과 작물이 정한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수확하는 날, 땅은 우리가 심은 것보다 많은 곡식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웃으며 낟알을 바구니에 쏟았다. 봄에 먹지 않고 남긴 씨앗도, 여러 달 동안 돌을 치우고 새를 쫓은 일도 헛되지 않았다. 수확한 곡식은 당장 먹고도 일부를 남길 만큼 많았다.
그러자 기쁨이 가라앉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누가 얼마나 가져갈 건데?”
땅에서 돌을 가장 많이 골라낸 사람은 자기 몫이 더 커야 한다고 했다. 밤에 밭을 지킨 사람도 같은 말을 했다. 사냥한 고기로 일꾼들을 먹인 사람은 밭에 나오지 않았어도 자기 노동이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밭 가까이에 집을 지은 사람은 자기 집 앞의 땅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모두의 눈이 곡식 바구니를 맡았던 여자에게 향했다. 봄에 씨앗을 지킨 사람이 이제는 수확을 나누는 일까지 맡게 된 것이다.
앞에 앉은 남자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때부터 권력자가 생긴 겁니까?”
“아니요. 한 번 수확했다고 곧바로 왕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나는 사람들이 몫을 두고 다투던 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씨앗을 보관하고, 밭을 쓸 순서를 정하고, 수확을 나눠야 했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관리 역할이었지만, 그 일을 계속 맡다 보면 누가 얼마나 먹을지와 다음 해 계획을 정할 힘이 생길 수 있었죠.”
수렵과 채집을 하던 때에도 좋은 장소를 두고 싸우거나 음식을 저장하는 일은 있었다. 농업이 소유와 갈등을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땅에 여러 사람의 노동이 들어가고, 수확한 곡식이 한곳에 쌓여 다음 계절까지 남으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누가 땅을 쓰고, 누가 창고를 지키며, 수확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해마다 다시 정해야 했다.
농업이 시작된 날 왕과 도시가 함께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밭에는 경계가 필요했고, 저장한 곡식에는 지키는 사람과 나누는 규칙이 필요했다. 수확이 늘면 더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었지만, 곡식과 분배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더 큰 힘이 생길 수도 있었다. 농업은 식량을 늘리는 동시에 토지와 저장물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힘이 모일 조건도 만들었다.
곡식을 맡은 여자는 사람들의 말을 한참 들었다. 그러고는 수확을 나누기 전에 가장 좋은 낟알을 조금씩 골라 빈 항아리에 넣었다.
“그건 누구 몫이야?”
내가 물었다.
“아무도 못 먹어.”
“왜?”
여자는 항아리 입구를 막으며 말했다.
“다음 해 거니까.”
첫 수확이 끝나자 다음 해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시작됐다.
우리는 더 많은 식량을 얻었다. 그 대신 수확 일부를 먹지 않고 남겨 두고, 다음 해에도 같은 땅에서 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다.